① 기상청이 발표한 ‘2024년 9월호 기후분석정보’ 자료. 이상고온은 평년(1991~2020년)에 비해 기온이 현저히 높은 극한현상을 말하며, 2024년 9월 기준 국내 대부분의 지역이 평년 대비 이상고온 발생일수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24년 9월 최고기온 기준 이상고온 발생일수는 2024년 16.9일로 2023년 4.8일에 비해 크게 증가했고, 최저기온 기준 이상고온 발생일수도 2024년 19.7일로 2023년 12.5일보다 늘어났다.
② 기상청의 2024년 9월호 기후분석정보 자료. 2024년 9월은 전국적으로 2023년 9월보다 기온이 2.1℃ 높았다.
③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농산물 생산·수급 관리 계획을 세우기 위한 기후변화 대응 수급 TF를 발족했다.
기후위기 극복, 현장에서 답을 찾다
농업계에 미치는 영향과 정부 대응은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 고성진 기자 2024. 12. 30
2024년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체감할 수 있는 한 해였다. 농업분야에선 장기간 이어진 이상고온과 저온현상, 집중호우와 가뭄 등 극과 극을 오가는 기후변화의 위력에 농가나 유통인, 소비자까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엔 기후로 인한 피해가 특정 시기, 특정 작물에 한정된 경향이 짙었다면 최근엔 시기, 작물 가릴 것 없이 생육부진 및 지연, 생산량 감소 등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어느새 제철 농산물이 제철에 온전히 자라는 것이 ‘다행스러운’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기후변화가 농업 부문에 미치는 영향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구 온난화로 강원 지역 고지대에서 재배해 온 고랭지배추·무 수급 변동성 문제가 고질적으로 대두되는 등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울려왔다. 최근 양상은 이상기후 강도가 더 세지고 발생 주기가 빈번해지는 등 이전과 달리 예측이 어려워지면서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내놓은 기후변화 대응 방안은 아직 근본적인 처방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나를 막으면 다른 문제가 터지고, 어떤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사이 새로운 무언가가 농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에도 일부 농산물 주산지와 농가를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대비한 품종 육성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직접 현장에서 부딪히며 기후변화 극복 방안을 찾아가고 있는 사과·배 재배 현장을 찾았다.
# 이상기후 빈번 펄펄 끓던 여름·가을…잇단 농산물 피해에 농업재해 여부 논란도
기상청 관계자의 말처럼,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계절을 경험하고 있다. 기상 데이터 측면에서 보면 2024년 여름과 가을은 50년 만에 최고로 더웠던 해로 기록된다. 지난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6℃로 평년(23.7℃)보다 1.9℃ 높았고, 가을철 전국 평균기온도 16.8℃로 평년(14.1℃)보다 2.7℃ 높았다. 여름과 가을 모두 1973년 이래 50년 만의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가을철 고온 현상이 이례적이었는데, 1948년 이후 76년 만에 서울에서 9월 폭염이 발생했고, 춘천은 1966년 기상관측 이래 첫 9월 열대야가 나타났다. 높은 기온이 11월 중순까지 이어지면서 농업 생산 현장 역시 예기치 못한 피해가 속출했다.
봄철 전국적인 냉해로 사과와 배, 복숭아 등 생산량이 30% 급감한 2023년과 달리 2024년에는 봄철 냉해 관리를 통해 생산량 회복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실제 현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가을철까지 이어진 고온 현상으로 인해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과는 일소 피해와 착색 불량 등의 어려움이 컸고, 배는 일소·열과 피해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얼마 남지 않은 2025년 설 수급 차질을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과수 분야에서 2023년과 2024년의 차이점을 꼽는다면, 2023년은 착과량(생산량) 자체가 많이 감소한 피해가 큰 반면 2024년은 생산량이 양호한 편인데 유통·판매할 수 있는 가능 물량이 크게 줄어든, 품질 하락 요인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이상기후 피해가 빈번해지면서 농업재해 인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24년 저온, 강우, 일조량 부족 등 이상기후로 매실 저온 피해와 마늘 2차 생장, 양파 생육 불량은 물론 여름철 기록적인 폭염에 따른 인삼 생육 불량, 단호박 착과 불량, 감귤 열과 피해 등이 농업재해로 인정 받았다. 고온다습한 이상기후 탓에 중국에서 날아온 벼멸구로 인한 피해 역시 농업재해로 인정됐다. 이런 가운데 농업(농작물) 재해보험 약관에 특정된 기후재해와 달리 복합적인 기후위기가 확대됨에 따라 보험 보장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고, 보험 약관 개정 등을 비롯해 농업 생산 기반의 안전망을 대대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기가 됐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 기후변화 설문 10명 중 6명 “생산성 악영향”…응답자 중 38.5%는 “대책 없다”
기후변화와 관련, 2022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3%가 기후변화가 농업 생산성(수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고, 64.8%는 품질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상기후 중 생산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현상으로는 이상기온, 태풍, 폭염 등을 선택했다. 생산 현장에서는 이상기후 영향이 있을 때 평소보다 비료 사용량이나 사료 급여량을 늘렸다는 응답자가 42.4%였고, 85.5%는 평소보다 노동력을 더 많이 투입했다. 응답자 중 42.8%는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업인의 개별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 중 38.5%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답했다.
# 정부 정책은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대책 마련…재해예방시설 확충 등 핵심
2023년, 이상기후와 병해충 피해 등으로 주요 과일 생산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그 여파가 2024년까지 이어져, 과일류 전반에 가격강세가 지속됐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4월, 기후변화에도 과일을 안정적으로 생산·소비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을 위해 2030년까지 추진할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대책’을 내놨다.
농식품부는 먼저 과수산업 정책 방향을 ‘기후변화 대응 강화’와 ‘소비자 니즈(욕구) 충족’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과일 중 소비 비중이 가장 큰 사과 생산량이 평년 수준인 10a당 1457kg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시기별 위험요인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2024 사과 안심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앞서 1월부터 냉해·가뭄·탄저병 등 시기별 위험요인을 사전에 관리하기 위해 ‘생육관리협의체’를 가동하기도 했다.
농식품부는 중장기적인 측면에선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과 경쟁력을 갖춘 과수산업’ 육성을 위해 △재해·수급 대응 역량 제고 △생산기반 확보 및 생산성 제고 △유통구조 효율화 △소비자 선택권 강화 등 4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재해 대응 측면에선 재해예방시설을 크게 확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1~16% 수준의 사과·배 재해예방시설 보급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농식품부의 방침이다. 수급 측면에선 2023년 4만9000톤, 4만2000톤 수준이었던 사과·배 계약재배물량을 2030년까지 전체 생산량의 30% 정도인 사과 15만톤, 배 6만톤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과일 생산기반은 기후변화를 감안해 ‘미래 재배적지’를 중심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 배보다는 사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과 재배적지가 북상하는 상황을 고려해 강원도 등 신규 산지를 전략적으로 육성, 2030년까지 강원도 5대 산지(정선·양구·홍천·영월·평창) 면적을 현재의 2배 이상인 2000ha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특히, 미래 재배적지에 스마트 과수원을 개소당 20ha 내외의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로 육성하게 되는데, 올해 신규 5개소(100ha)를 시작으로 2030년에는 전체 사과 재배면적의 4%가량인 60개소(1200ha)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 60개소 조성을 마무리하면 전체 사과 생산량의 8%를 이곳에서 공급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통구조 효율화는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을 바탕으로 유통단계를 1~2단계 단축시켜 사과·배 유통비용을 10% 절감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소비자 선택권 다양화 측면에선 ‘노란 사과’, ‘초록 배’ 등 다양한 신품종 시장 확대를 위해 현장 기술 지도를 강화하고 홍보·마케팅을 집중 지원할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이 같은 세부 사업을 마무리하는 2030년에는 사과 재배면적 3만3000ha이상 유지, 생산량 50만톤 이상 확보, 사과·배 유통비용 10%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정책 추진에도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여름철 고온과 착색기 일조량 부족 등의 여파로 50만톤에 미치지 못한 46만3000톤 수준으로 추정됐으며, 배 생산량은 이상 고온 및 가을 집중호우로 일소·열과 피해가 극심해 19만2000톤 내외에 머문 것으로 집계됐다.
# 정부 유관기관 대응 농산물 신품종 확산 지원…사과·배 창고형 정부 수매 추진
정부 유관기관에선 농산물 유통 및 수급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24년 8월, 홍문표 사장 취임 후 농업계가 직면한 기후위기에 대응해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생산 및 수급 관리할 수 있는 종합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 수급 TF’를 발족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aT가 TF를 통해 내놓은 기후변화 대응방안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생산지원으로, 농촌진흥청 등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해 놓은 농산물 신품종이 현장에 확산될 수 있도록 유통·판매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아울러 과일류 수급 안정 차원에서 사과·배를 대상으로 창고형 정부 수매를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도록 ‘스마트농업’ 모델 구축 및 확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공공비축역량 개선이다. 기후 온난화로 농산물 북방한계선이 북상하고, 이상고온으로 여름철 고랭지배추 수급 불안이 빈번해지는 등 농산물 수급문제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CA 저장기술’과 같은 새로운 저장기술 도입을 통해 비축농산물 보관 기간을 획기적으로 연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50년 이상 노후화된 aT 비축기지를 현대화·광역화하는 등 현재 9만톤 수준인 비축농산물 저장능력을 2배 이상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한다. 농산물 공급 과잉 시에는 수출로 국내 농산물 수급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도록 ‘긴급수출시스템’도 마련하기로 했다.
세 번째는 쌀을 포함, 밀·콩·보리·옥수수까지 ‘5곡’을 전략작물로 육성해 식량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것인데, 쌀을 제외한 4곡의 자급률을 오는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지막은 통계농업을 기반으로 한 ‘선제적 수급관리시스템 구축’으로, 생산량·비축량·반입량 등의 통계를 바탕으로 농산물 과부족량을 추정해 적기·적정 비축 물량 산출체계를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 기반의 선제적 수급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aT의 생각이다.
aT는 이 같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생산·수급관리 종합계획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 수급’ 및 ‘전략작물 육성’ 부문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농촌진흥청 등 관련 기관과 협업 관계 구축을 통해 사업기반을 확립할 예정이다. 동시에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예산 마련을 위해 정부, 국회 등과도 협의를 지속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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