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인(단체)은 지난해 시시때때로 정부 규탄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개최하며 정부의 농산물 수입 확대 정책을 반대하고 쌀값 안정화를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6일 서울역 인근에서 농민의길 주최로 개최된 ‘쌀값 대폭락 규탄·농민생존권 사수, 쌀값보장 농민대회’의 모습.농업인(단체)은 지난해 시시때때로 정부 규탄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개최하며 정부의 농산물 수입 확대 정책을 반대하고 쌀값 안정화를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6일 서울역 인근에서 농민의길 주최로 개최된 ‘쌀값 대폭락 규탄·농민생존권 사수, 쌀값보장 농민대회’의 모습
농산물 수입·양곡관리법 "동상이몽"
정부, 농업인간 갈등 해소로 신뢰 회복을
농수축산신문 이문예 기자 2024. 12. 31
농업은 국가의 핵심동력 산업으로 국민의 먹거리, 즉 생존과 직결된다. 특히 지금 농업은 기후 변화, 시장 개방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면서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농업인(단체)과의 협력 속에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매년 농업인과의 갈등이 이어지며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결국 농업정책의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농업의 미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농업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농업인 단체와의 협력은 농업인들의 경제적 안정과 농촌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따라서 정부와 농업인간의 갈등 해소를 통한 농업정책의 신뢰 회복은 단순히 농업인의 불만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농업의 지속 가능성과 경제적 안정, 더나아가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핵심 과제인 셈이다.
이에 최근 빚어진 농업분야의 대표적인 갈등 사례와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봤다.
# 물가 잡으려 농산물 수입하는 정부 vs 생산기반 정비가 먼저라는 농업인단체
농업인단체는 그동안 농업인의 삶의 질 제고, 고품질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 기반 구축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정부와 단합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종종 농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단을 두고 크고 작은 이견을 보이며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정책 비판자로 각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갈등 사례로 농산물 수입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려는 정부와 농업인간의 갈등을 꼽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서민물가를 잡기 위한 먹거리 물가안정 대책으로 시시때때로 농산물 수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공급 부족에 기인한다고 판단, 수입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를 인하·면제하며 시장의 문을 더 확실히 열어줬다. 국민들이 가장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먹거리·장바구니 물가를 통해 전반적인 물가안정 시그널을 주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이에 농업관련 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의 수입 의존적 물가안정 대책이 ‘농업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잘못된 정책’이라 비판하며, 농축산물 수입 확대의 물가안정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는 특히 ‘금사과’, ‘금배추’라는 단어가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기상이변에 따른 작황부진이라는 본질적 원인을 들여다 봐야 한다며 농업 생산기반의 정비, 농가 경영안정장치 마련을 보다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는 “수입에 의존한 단기 농축산물 수급 정책은 자칫 국내 농업 생산기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물가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역시 지난해 11월 2025년도 예산안이 발표되자 “윤석열 정부의 핵심 농정공약이던 직불금 5조 원 확대 공약 이행도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물가 상승을 이유로 한 수입 농산물 관련 예산은 여전히 그대로”라며 “무분별한 할당관세 예산을 감축하라”고 지적했다. 농식품바우처 사업 지원예산, 무기질비료 가격보조 및 수급안정 지원사업 등 꼭 필요한 사업 예산은 축소, 전액 삭감하면서도 농산물 수입 예산은 그대로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비춰지자 비판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전농과 전국쌀생산자협회 등 8개 단체가 참여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이하 농민의길)도 수입 농산물 확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원오 농민의길 상임대표(전농 의장)는 “매년 5%의 저관세로 들여오는 40만8700톤의 수입쌀 때문에 쌀값이 폭락하고, 할당관세로 들어오는 마늘·양파 때문에 우리 농가들이 밭을 갈아엎고 있다”며 “물가를 잡겠다고 수입을 그렇게 늘려왔어도 결국 물가가 잡혔냐”고 반문했다.
이어 수입 농산물을 농업기반 약화, 농촌 소멸 위기 등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같은 농업관련 단체들의 지적에 정부는 국내 공급 부족분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명과 함께 작황 등을 면밀히 점검하고 생산자단체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수급안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거듭 밝히며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갈등의 불을 지피는 모양새가 됐다. 특히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국민들의 체감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보도에 연일 반박자료 등을 통해 대응에 나섰지만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농업인과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 양곡관리법 두고 "동상이몽"...정부·여당과 야당, 단체 갈등 극으로
또 다른 대표적인 갈등 사례로 쌀값 폭락으로 촉발된 양곡관리법 개정 논란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지난해 쌀값이 폭락으로 생산농가들의 영농 의지마저 꺾인 차에 양곡관리법 개정을 둔 정부·여당과 야당의 첨예한 대립은 결국 정부 양곡정책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붙은 불편한 별칭은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거부권 행사 법안’이다. 정부의 시장격리 의무화를 명시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돼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빛을 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2대 국회에 들어 시장격리 의무 기준을 다소 완화한 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지난해 11월 28일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또 다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에 법안은 국회로 돌아갔다.
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농어업재해보험법, 농어업재해대책법 등과 함께 농업 4법으로 불렸는데,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에 대해 지난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네 가지 법”, “농망 4법”이라는 거센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재정 문제도 있지만 쌀 공급과잉을 부추길 것이 자명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선 농업인 단체들도 다소 의견이 엇갈린다.
농민의길은 양곡관리법 추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수차례 집회를 열었고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과 함께 ‘쌀값 정상화 및 농업민생 4법 개정을 위한 비상행동’을 구성, ‘농업민생 4법 거부권을 규탄한다’며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농민의길은 지난해 전종덕 의원(진보당, 비례)과 머리를 맞대고 쌀 공정가격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번에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전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 내용이 일부 반영됐다. 그렇기에 농민의길은 “농업인의 요구가 담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즉각 수용하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농연은 양곡관리법이 고비를 넘나들 때에도 의견 표출을 자제하는 등 조금은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쌀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과잉생산 물량에 대한 단기적 의무매입이 아닌 적정생산과 소비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농연은 지난해 2월 성명을 통해 “정부의 의도적 시장 개입을 통한 농산물 가격 지지·보전 정책에는 다소 과도한 재정이 소요되고 자칫 생산 과잉으로 이어져 전반적인 가격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곡정책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정부와 야당, 여당과 야당, 농업인관련 단체 간에 의견이 갈리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는 양상이다. 향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정책 설계시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치 확대해야
농업계와 전문가들은 농업정책에 대한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들과의 소통의 장을 활성화해 협치를 통한 최적의 정책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호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갈등이 격화된 농업 이슈들도 자세히 뜯어보면 모두 농업의 지속가능성 제고와 농업인의 삶의 질 제고 등 방법론만 다를 뿐 정책의 목표는 일치한다”며 “농업 문제를 둘러싼 강대강 대치국면 지속에 따른 피해는 모두 농업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와 여야, 농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수렴과 협치를 통해 최적의 정책 실행방안을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유권자, 정치인, 관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상황하에서는 이해집단 간의 갈등으로 인해 정부의 개입이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며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농업경영, 자원‧환경, 농산물 무역, 농업위험 등의 문제들은 농업인들이 다른 경제주체들과 능동적으로 소통하고 거래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이 명예교수는 “정책 설정 과정에서 중요한 정책 당사자 간 이해관계, 정치적 압력 등 정치적 측면과의 상호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정부 정책 추진도 기초 단계에서부터 지역의 생산자와 전문가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최근 정부 정책 추진 과정을 보면 우선 정부가 정책을 결정해 발표하고 차후에 그 안에서 좁은 범위의 논의를 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며 현장과의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소장은 “농산물 수입 관련해서도 농산물 가격이 높다는 건 물량이 없다는 것이고 대다수의 농업인들이 작황이 좋지 않아 밭을 갈아엎거나 수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거기에 수입을 논하니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현장과의 정보 공유가 충분하면 상호간 이해를 바탕으로 감내하고 준비할 수 있는 문제들도 정부가 알아서 결정하고 방향을 잡아 나가면서 엇박자가 계속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종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도 농업 이슈를 제기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이제는 본래 목적했던 협치의 기능을 보다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