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시설현대화가 시행되는 동시에 거래제도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 공영도매시장과 농산물유통의 기준이 되는 가락시장에 도매상인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락시장은 물론 산지의 출하자들 간에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것은 농산물 유통에 큰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서울농식품공사 지난해 조례 개정
시장도매인제 300개까지 지정토록
▲ 시설현대화와 시장도매인제 도입 검토 =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이 시행되면서 도매상 거래방식인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놓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지난 2013년 1월 공포된 서울시 농수산물도매시장 조례 개정에서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300개까지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서울시의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담은 서울시도매시장 업무규정 개정 승인 요청에 대해 △ 출하대금정산조직 설립을 통한 대금결제 안전성·투명성 확보 △ 2014년까지 시장도매인 상한수 및 자본금 규모 연구용역, 전문가 협의 거쳐 업무규정에 반영 △ 농식품부, 서울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출하자 및 유통인 등 공청회 통한 합의 등의 승인 조건을 달았다.
현재 출하대금 정산 조직인 가락시장정산주식회사가 출범해 운영되고 있고, 관련 연구용역도 마무리 단계이다. 앞으로 출하자와 유통인 등의 시장도매인제 도입에 대한 합의 조건만 남겨둔 상황이다.
시장도매인제 도입 여부 때문에 가락시장의 시설현대화사업도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 단계에서는 상장매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경매장을 가변형으로 설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시장도매인제 도입이 확정될 경우 별도의 시장도매인제 유통시설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사업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영세출하자 보호·거래 투명성 확보
상장매매가 최적의 거래방식 여론
▲ 가락시장에 적합한 거래제도는 = 공영도매시장은 농산물의 원활한 유통과 농산물 수급실태를 반영하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가락시장은 가장 중심이 되는 허브 도매시장이다.
따라서 가락시장은 농산물 유통을 왜곡시키지 않고, 생산자인 농민과 출하자가 중간 유통 상인들과의 거래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훼손시켜선 안된다. 현재 다양한 거래제도와 방법 중에서 영세한 출하자를 보호하고 유통상인과 거래에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는 상장매매이다. 거래물량과 거래자, 가격 등 모든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매매는 농민의 거래 교섭력을 높여 우월한 유통정보를 보유한 도매상과 유통업체들의 횡포를 사전에 차단하고 출하자가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이다.
현행 공영도매시장 상장매매는 출하자를 대리로 한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이 상호 동등한 위치에서 농산물을 거래하고 있어 시장과 유통정보에 둔감한 영세농민들에게는 최적의 거래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식품유통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통환경 변화와 도매시장 유통 혁신 방향’이란 제목이 주제발표를 통해 “중도매인과 도매법인 한쪽의 교섭력이 약할 경우 거래예속 관계가 형성돼 수탈과 착취구조가 된다”며 “과거 유사도매시장 위탁도매상들이 산지 출하자들의 농산물을 위탁받아 칼질, 늑장 정산 등 횡포가 심했던 것은 출하자들의 거래교섭력이 매우 약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공영도매시장, 특히 가락시장에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를 병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현행 경매방식에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시장도매인제는 해법이 아니고, 개인화된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인 이상적인 도매상이 아닌 과거 유사도매시장 위탁상과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양승룡 고려대학교 교수는 “가락시장은 위탁상 제도의 극심한 폐해를 방지하고 농산물 유통을 효율화 시키는 목적으로 설립돼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고,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도매유통과 비교해도 우수하다”며 “그러나 시장도매인제가 득세해 경매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수산물 임의상장제로 인해 나타난 문제가 농산물에서도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또 “가락시장은 경매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경매제가 훼손될 경우 농산물유통에 문제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몇몇 상인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농민과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유럽 도매상 체제 운영되지만
우리와는 유통구조 달라 적용 무리
▲ 도매상제 과연 선진 제도 인가 = 미국과 유럽의 농산물도매시장은 도매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도매시장에도 선진국과 같이 도매상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농산물 유통은 구조부터 다르다. 선진국의 경우 협동조합 형태 또는 기업화된 생산자들이 도매시장에 출하하고 있다. 산지 출하가 조직화·규모화 돼 있기 때문에 도매시장과 상업적 거래를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생산자와 출하자조직은 선진국과 비교해 매우 영세하다.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도매시장에 출하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도매상 체제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기자는 지난 2012년 뉴욕 헌츠포인트 도매시장(터미널마켓)을 취재한 바 있다. 도매상 체제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시장인 헌츠포인트 도매시장에서는 50여개의 도매업체(도매상)이 있는데, 도매상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철저히 신자유주의식 약육강식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매시장내 거대 도매업체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도매업체는 예속돼 있고, 산지가 기업화된 미국일지라도 농산물 구매결정에서 거대 도매상 주도로 이뤄지고 있었다. 특히 거대 도매상 중심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이 때문에 산지출하자와 영세 도매상은 늘 그들의 그늘에 가려진 시장으로 보였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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