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상 임야서 농산물 재배
농업·임업 모두 등록 불가능
한시적 구제방안 마련해야
농가 다변화 반영 정책 필요
농민신문 김소진 기자 2024. 12. 10
# 경남 양산의 1653㎡(500평) ‘임야’에서 호박·들깨 농사를 짓는 A씨(69)는 올초 ‘농업경영체’ 등록이 취소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농지가 아닌 임야에서 농산물을 재배해서다. 농업경영체 지위를 잃자 직불금 신청은 물론 농업기술센터에서 농기계도 빌려 쓰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임업경영체를 신청하려 했지만 임야에서 임산물을 재배하지 않으면 임업경영체 등록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A씨가 농업경영체 지위를 잃은 배경엔 올 2월 개정 시행된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있다. 종전에는 농업경영정보 등록에 대한 법적 기준이 부재했지만, 바뀐 법은 농지 1000㎡ 이상에서 농작물을 경작 또는 연간 120만원 이상 농업소득을 거두는 농가 등으로 요건을 명확히 했다. 비농민의 등록을 막고, 농업경영정보 등록·관리 체계를 강화한다는 취지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농지에서 경작하지 않으면 농업경영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뜻하지 않게 농업경영체 지위를 상실한 A씨는 “영농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라고 토로한다. 그는 “농기센터에서 농기계를 임차하려고 해도 농업경영체가 아니면 빌릴 수 없다”며 “농지로 지목을 바꾸려면 비용 3000만원이 든다고 하는데 농사짓는 사람이 어떻게 부담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대로 농사를 짓다간 ‘농업경영체’에서 아예 ‘처벌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산지관리법’은 산지에서 산지전용허가를 받지 않고 일반 농산물 등을 재배하면 처벌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임업경영체’로 전환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A씨는 “산림청에선 임업경영체 등록은 임산물을 생산해야 신청할 수 있다고 한다”며 “농산물만 재배해왔는데 이제 와서 나무 같은 임산물을 언제 키워서 어디다 파느냐”고 했다. 임야에서 농사짓는 농업경영체는 산림청이 소관하는 ‘임야 대상 농업경영체’로 분류된다. 하지만 ‘임업 및 산촌 진흥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른 임산물 등으로 품목이 제한돼 있다.
현장에서는 A씨와 같이 회색지대에 처한 농가를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농업경영체 요건 완화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과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정 기간 농지로 사용한 임야의 지목 변경을 지원하는 특례 조치를 펼치기도 했다”며 “농촌에는 노년층이 많아 이러한 지원 제도를 알기 어려운 만큼 농업경영체에 등록했던 농민에 한해 한시적으로 계도 기간을 두고 지목 변경 등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지를 기준으로 경영체를 판단한다는) 농식품부의 원칙은 유지해야 한다”며 “경영체 문턱을 낮추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농가’와 ‘경영체’ 등에 대한 근본적 논의 없이는 농정의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하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농가라는 실체에 대한 고민 없이는 이런 회색지대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며 “현재 많은 농가가 위험을 분산하고자 다양한 품목을 재배하는 등 경영이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법적·행정적 논리에 따라 품목·농지 등으로 농가를 쪼개서 구분하기보다는 실제 농업경영체들이 활동하는 양상을 반영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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