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큰 폭으로 줄었던 농업부문 연구·개발(R&D) 예산이 내년에도 원상회복은 어려울 모양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국가 자체 기후변화 대응 R&D사업 예산은 2조5707억원으로 올해 2조3379억원보다는 늘었지만 지난해 2조5998억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극한’ 호우와 고온 등 빈발하는 이상기후와 맞서야 하는 농업부문 기후변화 대응 R&D사업 예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관련 내년 예산은 329억6000만원으로 올해보다는 4% 늘었지만 지난해 435억3800만원 대비 24.3%나 줄어 증액이라는 표현이 민망할 지경이다. 농촌진흥청의 관련 예산 역시 올해 20.1%가 급감했다가 내년 예산안에 15% 회복되는 데 그쳤다. 농진청의 스마트농업 확산과 그린바이오 기술 확충 등 농업 미래성장산업화 관련 예산도 그렇다. 지난해 2440억원에서 올해 2007억원으로 줄더니 내년에는 1380억원으로 주저앉았다.
문제는 대폭 삭감된 농업부문 R&D 예산이 정부의 농업분야 국정과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중립 실현과 재생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 선진화된 재난안전관리체계 구축 등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국정과제다. 예산이 쪼그라들면 대응 기술 개발에 주름살이 질 수밖에 없다. 올해 기후변화 대응 지원 과제 가운데 24건이 중단됐다고 분석한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농진청의 스마트농업 R&D 예산 삭감은 정부의 국정과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후변화와 농업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 기반 스마트농업 확산’을 국정과제로 내걸고, 2027년까지 농업생산 기술의 30%를 스마트농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주체가 바로 현 정부다. 이러니 국정감사에서 스마트농업 확산은 헛구호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우리 농업 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뒤져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2022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림수산과 식품분야 기술은 유럽연합(EU)의 82.5%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 스마트팜은 77.5%로 EU는 물론 중국에도 뒤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R&D 예산마저 뒷걸음질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예산으로 말한다는 사실을 국회에서만이라도 확인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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