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벼 재배면적 8만ha 감축 계획에 농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9일 올해 벼멸구 창궐로 피해가 컸던 전북 임실군 관촌면 들녘에서 한 농민이 콤바인으로 추수에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수입 품고 자급률 낮추려는 정부
쌀 자급률에 정부 책임 묻는 농민
현장선 쌀 감산 이후 혼란 우려도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4. 11. 3
벼 재배면적 8만ha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과잉생산’되는 쌀을 줄여 수급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지만, 쌀 자급률을 떨어뜨리고 농업 전체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농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는 지난달 10일·17일 쌀산업구조개혁협의체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벼 재배면적 8만ha 감축’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생산량으로 치면 41만8000톤. 최근의 수요 대비 초과생산량과 점점 줄어드는 수요 추세를 고려했으며, 목표에 미달할 이행률(회귀면적 등)까지 감안해 공격적으로 설정한 면적이다.
지난달 24일 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 송미령 장관이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론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분위기다. 쌀산업구조개혁협의체가 밭은 간격의 회의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고 농식품부 담당부서도 이미 11월 중 확정계획 발표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쌀값 문제에 있어 재배면적 감축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타작물 전환과 가루쌀 재배 등 지금껏 같은 흐름의 정책을 추진해 왔으며 이번 8만ha 감축안으로 이를 한층 본격화하려는 모습이다.
구태여 입 밖에 내진 않지만 자연히 쌀 자급률 하락도 염두에 두고 있다. 8만ha, 41만8000톤의 쌀은 최근 5년 평균 94.3%인 쌀 자급률을 83.1%로 끌어내릴 수 있는 양이다. 쌀 대신 콩·밀 등 자급률 낮은 품목의 재배를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선 쌀 자급률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농업을 상징하는 대표작목이자 주곡인 쌀의 자급률을 포기하는 자체가 농민 정서를 자극할뿐더러, 현실적 문제도 있다. 급속도로 빈번해진 기상이변은 작물의 생산량에 커다란 변수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올해 일본에서 나타났듯 언제라도 식량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최소한 주곡의 자급기반이라도 유지해야 식량안보를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축 목표량(41만8000톤)이 의무수입량(40만8700톤)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불편한 그림이다. 결과적으로는 수입을 위해 국내 생산을 줄이는 모습인데, 정작 수입 협상을 맺은 정부 스스로 책임 있는 정책을 내지 못하고 농민들에게 감산을 유도하고 있다. 애당초 쌀에 의존하게 된 농업구조 자체가 정부 개방농정에 따른 만성적 채소가격 부진에 기인하고 있기도 하다.
전국쌀생산자협회·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몇몇 농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결집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현장에선 좀더 현실적인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벼 재배면적 감축이 정부의 생각처럼 콩·밀 재배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농업 현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정진 담양군농민회장은 “정부가 유도하는 타작물은 인력이 많이 필요해 쌀을 하다 넘어가기 쉽지 않다. 담양을 예로 들면 그나마 전환하기 쉬운 게 포도와 딸기라 이 작목들이 연쇄 폭락하게 된다. 쌀 재배면적이 흔들리면 모든 농산물 품목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또한 “콩농사 소득이 벼보다 나으면 작목전환을 하지 말라 해도 할 수밖에 없다. 근데 콩농사 지을 환경은 만들어놓지 않고 그냥 넘어가라고만 하니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