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선 칼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한국농어민신문 칼럼=윤병선 건국대 교수 2024. 10. 18
기존의 제도를 어떻게 하면 더 포용적인 제도로 만들까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지, 사적 민간 영역에 의탁해 농업과 먹거리를 맡겨서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게 만드는 제도는 포용적인 제도가 아니며, 이 길은 국가가 실패하는 길이다
한국의 소설가 한강씨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낭보가 있은 지 얼마 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유일하게 시상이 이루어지는 노벨경제학상이지만,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과 관계없이 1968년에 뒤늦게 스웨덴 중앙은행이 제정했다.
어쨌든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세계의 불평등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해 온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국의 신문에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연구한 학자들이 받게 되었다고 보도됐다. 얼핏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보이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이지만, 실제의 내용은 민주주의에 기반한 포용적인 제도야말로 국가를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라는 것이 주된 주장이다.
포용적인 제도는 농업에서도 절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갈수록 가혹해지는 기후재난에 노출된 우리의 농업과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농정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내년도 예산안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매해 제출되는 예산안을 통해 농정방향을 가늠해야 한다는 자체가 국가의 정책이 포용적이지 않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여름을 겪고 수확기를 맞이한 농민들이지만, 그러한 노고에 대한 경제적 대가는 충분히 보상되지 못하고 있다. 불볕더위와 병충해로 수확량이 많이 감소하면 시장의 공급물량이 줄어서 시장가격은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고, 이 때문에 농업소득의 감소를 피할 수도 있다. 농산물은 가격이 오르더라도 수요량의 변화는 비탄력적이어서 농업소득은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경제학원론은 가르치고 있으나, 시장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가 무섭게 수입농산물을 푸는 정책을 반복하다 보니 농업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사후적으로라도 재해에 따른 피해 보상이 적정하게 이루어지면 농가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여기에서 포용적인 제도가 작동한다면 어떤 제도가 가능할까? 기업농은 이윤을 목적으로 농업생산을 하지만, 농가의 경우에는 소득(생계비)을 목적으로 생산에 종사한다. 직불금의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의 안정적인 확보, 재해에 대한 보상 확대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을 보면, 이런 포용적 내용은 부실하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직불금 5조원 공약은 어려울 것 같고, 지난 봄만 하더라도 정부는 채소가격안정제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원예농산물 수급 정책을 발표했지만, 내년에 당장 예산액이 올해의 552억원에서 207억원으로 깎였다. 계약재배 등을 통해서 가격 차이의 보전과 출하장려금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이 깎인 것이다.
이런 삭감의 변명으로 나온 것이 수입보장보험이다. 수입보장보험은 농가소득과 경영안정을 위해 2015년부터 품목별 주산지를 중심으로 시범사업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가격하락분을 산정할 때의 기준가격이 턱없이 낮다는 이유로, 수확량의 산정에서도 판매할 수 없는 농산물까지 수확량에 포함해 피해율을 낮게 평가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제기되어 왔는데, 과감하게 본사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명칭은 농가의 수입을 보장하는 보험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던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 수입보장보험이 25년도 예산에는 25배나 증액되었다. 시장경제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보험이 기후재난을 빌미로 공적 기능을 대체할 기세다. 본 신문(2024년 9월 24일, 이상길의 시선)에서도 지적되었듯이, 그리고 많은 농민단체에서도 우려하고 있듯이 현재 상황은 수입보장보험이 안착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농업 현실을 살펴보면 수입보장보험 확대를 이유로 그나마 유지됐던 공적인 가격안정장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다. 보험을 매개로 농산물가격의 폭락, 농업소득의 감소를 공적영역이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시장화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포용적 제도는 빈틈없이 꼼꼼한 제도이어야 한다. 대표적인 밭작물인 고추만 보더라도 26만 농가가 3만1057ha를 재배하고 있는데, 0.1ha 미만 농가는 72%나 되고, 1.0ha 이상 농가는 0.7%에 불과하다. 마늘의 경우에도 71%의 농가가 0.1ha에도 미치지 못하는 면적을 재배하고 있다. 보험관리에 따른 행정력이나 보험 운영 등 막대한 사회적 낭비를 미리 예견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탐색비용, 거래비용 등으로 사회적 부가 사라지는 나쁜 제도의 전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보험시장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가 농촌을 배회할 수도 있다.
기존의 제도를 어떻게 하면 더 포용적인 제도로 만들까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지, 사적 민간 영역에 의탁하여 농업과 먹거리를 맡겨서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게 만드는 제도는 포용적인 제도가 아니며, 이 길은 국가가 실패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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