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경북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서 중도매인들이 경매를 앞둔 건고추 품위를 살피고 있다.
서안동농협 공판장 가보니
8월 경락값 지난해보다 5%↓
예년보다 상품 비중 크게 낮아
식품·외식업체 수요 많이 줄어
후기 수확량 시세 형성 변수로
농민신문 안동=함규원 기자 2024. 9. 12
9일 오전 경북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전국 최대 건고추 거래 산지답게 출하농가·유통인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안동시 임동면에서 1만6500㎡(5000평) 규모로 고추농사를 짓는 김경희씨(62)는 “올해는 워낙 가물어서 맏물을 따고 보니 수확할 게 별로 없는 상황”이라며 “작황이 부진한 데다 시세까지 낮아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8월 한달간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건고추(화건) 경락값은 600g당 평균 1만50원으로 지난해보다 5% 낮았다. 약세장은 9월 들어서도 계속됐다. 이날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선 꼭지 제거 건고추(화건)가 1만913원, 꼭지 미제거 물량은 9458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같은 때(9월 둘째주 월요일)와 비교하면 각각 5.5%, 0.7% 낮다.
농가들은 생산비도 건지기 힘든 가격대라고 입을 모았다. 주영준씨(59·영양군 청기면)는 “자재비를 포함해 생산비는 전년 대비 10% 이상 올라 필수 경비를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없다”고 밝혔다.
류재덕씨(51·안동시 풍천면)는 “작업인부 일당이 13만원으로 치솟는 등 인건비 부담으로 예전처럼 고추를 4∼5회 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격 약세 원인은 품위 하락이 꼽힌다. 김현수 서안동농협 경매사는 “예년 같으면 이맘때 상품 비중은 50% 정도인데 올해는 극심한 가뭄 탓에 수확 막바지인 ‘끝사리’ 수준으로 품위가 떨어진 고추가 많아 상품 비중은 20%로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수요 감소와 변화한 소비 경향도 시세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김원기 서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중도매인협회장은 “식품기업·외식업체 수요가 많이 줄었다”면서 “가공용으로 국산 햇건고추를 쓰는 곳이 감소하다보니 낙찰 물량의 30% 정도만 거래처에 넘기고, 나머지는 저장창고에 쌓아두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조연수 서안동농협 경매사는 “추석을 앞뒀지만 김치를 담그는 집들이 점점 줄고, 8∼9월 맏물·중물 수확 때 품위가 좋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김장용 건고추를 미리 앞당겨 구입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면서 “추석·김장 특수가 점차 희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후기 수확량이 시세 형성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영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양념채소관측팀장은 “2024년산 건고추 예상 생산량은 6만931t으로 전년(6만18t) 대비 1.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상고온·가뭄 영향으로 후기 착과가 감소했고 인건비 상승으로 수확을 조기에 끝내는 농가가 늘면서 수확량이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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