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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국책사업으로 밀 자급률 제고에 나섰지만 올해도 2% 안팎의 자급률이 예상돼 정책 실패에 따른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6월 4일 전북 김제시 부량면 금강리 들녘에서 한 농민이 크라스콤바인으로 밀을 수확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책사업 5년, 밀산업은 아직도 제자리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2024. 9. 8
바닥없는 쌀값 하락으로 농촌이 뒤숭숭하다. 전국 각지에서 수확을 코앞에 둔 논이 갈아엎어지고, 농사 현장에 있어야 할 트럭과 트랙터가 시내를 행진한다. 우리 밥상의 주인공인 쌀은 대한민국 농업을 상징하는 작물이자 농민의 절반이 재배하는 농촌경제의 대들보다. 농민들이 길길이 분노하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다.
쌀은 쌀대로 큰일이로되, 그만한 위기를 맞은 작물이 또 하나 있다. 쌀 파종에 앞서 일찌감치 수확을 마친 밀이다. 가뜩이나 가시밭길을 걷는 품목인데 중첩된 자연재해로 생산량과 품위가 떨어지면서 농가소득이 바닥을 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쌀과 같은 아우성은 찾아볼 수 없다. 자급률 2%에 재배면적 9536ha. 국내 농업의 대표적 비주류 품목으로, 애당초 결집할 수 있는 목소리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밀은 비주류라 해서 손을 놓을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 국민 1인당 소비량이 35.7kg으로 명실공히 쌀(56.4kg)에 이어 제2의 주식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자급률이 2%라는 것은 밀이 국가 식량자급률(49.3%)을 끌어내리는 주범이라는 뜻이며, 반대로 말하면 식량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식량자급률은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다. 쌀에 버금가는 주곡을 98%나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이상 국민 먹거리를 그만큼 다른 나라에 저당 잡혀 있는 셈이며 우리는 코로나19와 러-우 전쟁 등을 겪으며 이 문제가 우리의 삶을 뒤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목격했다. 밀 자급률을 높이는 일은 곧 국민 먹거리기본권을 강화하는 일이다.
농촌경제에서 갖는 의미도 각별하다. 밀은 양파·마늘·대파·배추 등 월동채소와 작기를 같이 한다. 품목을 불문하고 월동채소 가격 폭락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밀 생산이 늘어난다면 채소류 생산이 줄고 전체적인 농업 생산기반이 안정될 수 있다. 그로 인해 입지를 잃게 되는 건 국내의 어떤 농가도 아닌, 오로지 외국산 밀뿐이다.
2019년 국회가「밀산업 육성법」을 제정한 건 이같은 상황인식이 농업계 안팎에서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법률 제정으로 인해 정부엔 일정한 재정을 투입해 밀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1990년대부터 민간에 의해 힘겹게 이어져 온 ‘우리밀 살리기’가 마침내 국책사업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법률 제정 이후 5년, 밀산업은 여전히 한 발을 내딛기가 버겁다. 생산단지가 늘고, 정부수매가 늘고, 계약재배도 늘고 있지만 생산·가공·유통 어느 하나 체계가 잡히지 못하고 있다. 직불금은 농가소득을 보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올해 발생한 대규모 기상재해는 여느 품목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농가가 알아서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법률이 제정된 후 농림축산식품부는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2021~2025년)’을 수립했다. 2020년 0.8%였던 밀 자급률을 2025년 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었다. 1차계획 마지막 성적표가 될 2025년산 밀의 파종기는 불과 한 달여 뒤인 올해 10~11월이다. 현재까지의 성적표를 보면 2023년 자급률이 2%에 불과하며 올해는 극심한 흉작으로 자급률 퇴행이 우려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정부 정책 효과가 부진한 상태에서 생산 의욕마저 꺾여버려 당장 내년부터 재배면적 축소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5%는커녕 2% 현상유지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며 이는 정책의 대실패를 의미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생산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밀은 여전히 산업 기반이 열악하고 소득이 불안정하며 농민들 스스로도 재배가 익숙하지 않다. 농민 개개인의 확고한 사명감과 정부의 분명한 비전 제시가 없다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30년 이상 순전히 농민들의 사명감에 기대 존속해 온 밀산업. 법률이 생기고 정부 역할이 강제됐음에도 앞길은 좀체 밝게 열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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