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채소값 폭락 한파 여전…아쉬운 정부대책
가격안정방안·대응조치 미흡 효과 못내
대다수 품목 수급조절 매뉴얼 적용대상서 제외
과감한 수매격리·소비촉진 없인 값 회복 ‘먼길’
봄이 가까이 왔다고 하지만 채소류 시장엔 여전히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배추와 무 등 주력 품목은 물론이고 대파와 양배추·감자·당근·<청양>고추·시금치 등 대부분의 품목들이 가격 하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서다. 지난해 늦봄부터 폭락세를 보였던 마늘·양파·건고추 등까지 감안하면 채소류 시장은 1년 가까이 한겨울인 셈이다.
채소류를 출하 중인 대부분의 산지에선 한숨과 걱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수확을 포기하고 방치한 밭들이 속출하고 있다. 참다 못한 일부 주산지농협들이 묘목을 심고 상토를 고르는 등 바쁜 농사 준비를 뒤로 하고 서울 등 소비지를 찾아 소비 확대를 연일 호소하고 있지만 기대했던 가격 상승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귀향차량에 몸을 싣고 있다. 지난해보다 내린 가격에서 더 낮춰 판매할테니 제발 구입해 달라는 하소연에도 꽉 닫힌 소비자 지갑은 열릴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대형마트 관계자들의 안타까움도 전해진다.
산지도 소비지도 아우성이지만 가장 커야 할 정부의 목소리는 너무 작다는 평가다. 올 들어 26일 현재까지 정부가 채소값과 관련해 내놓은 대책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겨울배추·무의 공급량 감소 방침(본지 2월26일자 1·8면 보도) 정도다. 겨울배추는 모두 3만5000t을 감축하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농협 등 민간 자율감축분(1만5000t)을 포함한 것이다.
산지가 올 초부터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겨울무 1만t 추가 시장격리도 발표 시점을 놓고 말들이 많다. 시장격리를 2월 마지막 주 안에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계획을 발표한 건 마지막주가 지나기 불과 이틀 전인 26일이었다.
지난해산 저장 물량 과다 여파를 햇물량이 고스란히 입게 된 양파에 대해선 수급조절 매뉴얼상 ‘경계’단계인 만큼 그에 따른 대응 조치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양파즙 등 가공식품 소비를 늘리겠다는 것이 뼈대다. 도식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건고추에 대해서도 정부는 자체 보유물량 8000여t을 시장에 방출하지 않고 수급 및 가격 동향을 점검해나가겠다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시장 방출을 억제하는 것은 당연하고, 5800t을 긴급 수매하겠다는 것이라도 포함됐던 지난해 10월 ‘건고추 수급안정대책’과 비교해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지적이 다.
정부는 지난해 5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산지와 유통인·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를 꾸리는 한편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밝혀 왔다. 생산농가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그동안 중구난방식으로 전개돼 왔던 수급안정대책을 체계화하겠다는 뜻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수급조절위원회는 지난해 4월부터 올 2월까지 모두 10번 정도 열렸을 뿐이고 수급조절 매뉴얼은 배추·무·양파·마늘·건고추 등 아직 5개 품목에 대해서만 만들어졌다. 수급조절 매뉴얼 적용 대상 이외의 대다수 품목은 아예 정책적 사각지대에 내몰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만들어진 수급조절 매뉴얼 역시 농가의 현실을 반영하는 데는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으면서 제정 취지까지 희석할 태세다. 매뉴얼의 위기단계별 가격대는 서울 가락시장의 도매시세를 기준으로 하는데, 요즘처럼 산지 수집상이 밭떼기거래 물량에 대해 수확을 포기해 방치된 밭들이 널려 있는 상황에선 농가들의 체감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매뉴얼 적용 품목 밖의 주산지에선 매뉴얼조차 없다고 불만이고, 매뉴얼 대상 품목 산지는 정부 대응조치가 함량 미달이라고 아쉬워하는 형국이다.
물론 채소류값 하락과 관련한 정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각종 현안에 가렸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연초부터 축산업계를 강타한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에다 남북관계 개선 바람을 타고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 석달여 앞으로 바짝 다가온 6·4 지방선거 등 국민적 관심사들에 채소값 하락이 묻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농산물 소비는 심리에 좌우되는 측면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정부가 대규모 소비촉진 운동 등을 진작에 벌였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는다.
김소영 기자 spur222@nongmin.com 201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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