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병·복숭아순나방 등 병해충부터 저수지 범람, 농업용수 고갈, 열사병까지 농업 현장에서 기후재난이 일상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농업·농촌을 덮친 재해가 농민 피해를 넘어 식량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노후화한 농업생산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기상재해 조기 경보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철저한 대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6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재난에 따른 농업 현장의 문제점과 제도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주제발표를 맡은 남재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는 “농업은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산업”이라며 “식량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대비책 중에서도 저수지 등 농업생산기반시설 정비는 시급한 선결과제로 꼽힌다. 특히 반복된 풍수해로 농업용 저수지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2년 9월 경북 포항의 하천인 냉천의 범람은 참사로 이어졌다. 범람의 주된 원인으로 농업용 저수지가 언급되기도 했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업용 저수지는 노후화한 데다 정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저수지에 퇴적물이 쌓이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 때문에 40t을 저장하도록 설계된 저수지의 실제 수용량이 20t에 불과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폭우가 발생하면 제방이 무너지고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가 1월 내놓은 ‘인프라 총조사’에 따르면 30년 이상 노후화한 시설 가운데 저수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96.5%(1만6708개)로 가장 많다.
가뭄으로 인한 농업용수 고갈 우려도 시설 정비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감사원은 지난해 발간한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Ⅰ’ 감사 보고서에서 2030∼2100년 저수지의 ‘심각’ 단계 가뭄일수가 2012∼2021년과 견줘 3배 이상 증가하며 논가뭄이 심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강 사무총장은 “용수로가 노후화해 파손된 틈으로 물이 유실되고 급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며 “생산기반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농업 수로 등의 수명 연장 및 방재·감재 사업’ ‘방재 정보 네트워크사업’을 펼치며 ▲홍수 위험 농업수리시설 철거 ▲위험 관리 관측장비 설치 ▲누수 방지를 위한 정비·보수 등 체계적인 사전 대응에 나서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의 ‘농업기상재해 조기 경보시스템’을 고도화하자는 제언도 이어졌다. 이 시스템은 개별 농가에 맞춤형 날씨, 재해 정보, 관리 대책 등을 안내하는 서비스다. 조혜윤 농림축산식품부 농촌탄소중립정책과장은 “현재 농민의 시스템 가입률은 4%에 불과하다”며 “농진청과 농식품부, 지방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 등이 함께 가입률 확대에 힘쓰고, 기상이변이 발생했을 때 현장의 움직임까지 고려해 대응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사전 대책을 체계적으로 논의·설계할 조직을 구축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강 사무총장은 “환경부는 수자원 관리를 12개 과가 나눠 담당하지만, 농식품부는 2개 과가 전부”라면서 “농식품부에 국 단위의 조직을 신설해서 기후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