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73차례 농식품부의 현장 방문이 달갑지 않은 이유
한국농어민신문 이우정 기자 2024. 7. 12
높은 산자락의 경사면을 따라 신선한 초록빛을 머금은 고랭지 배추밭의 모습은 하늘아래 초록빛 바다가 펼쳐진 듯 이색적인 풍경을 만든다. 이 장관이 농민들이 이른 새벽부터 나와 하나하나 일궈낸 풍경임을 생각하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고랭지 배추 농민들은 연작피해, 이상기후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엔 정부의 무분별한 농산물 비축·수입정책에 배추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도 많다. 지난 3일과 5일, 양일간 평창, 태백 고랭지 배추밭에서 만난 농민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올 여름 배추가격 상승에 대비해 역대 최대물량을 비축한다는 정부 발표로 배추값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었다.
농업인의 소득 및 경영안정 복지증진을 위해 일해야 할 농식품부가 앞장서서 농산물 가격 낮추기에 올인하고 있으니 농식품부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실제 고랭지 배추 재배지에서 만난 농민들은 “농식품부 장관이 온다고 할 때마다 농산물 작황이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수입한다고 할까 봐 못 오게 막고 싶은 심정이다야”, “요즘 농민들에게 농식품부는 저승사자나 다름없어”라고 말했다.
심지어 기자가 배추 작황을 점검하러온 정부 관계자인줄 알고 화들짝 놀라며 꺼리기도 했다. "다음엔 어떤 작목이 또 타깃이 될까 전전긍긍하며 보고 있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농식품부의 현장 방문을 소통이 아닌 불시점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근 농식품부는 6월 한 달 간 농식품 물가안정 방안 모색을 위해 총 73차례에 걸쳐 농업 현장을 찾았다고 홍보했다. 송미령 장관은 9일 국회에서 열린 첫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스스로 윤석열 정부의 농정을 10점 만점에 9점은 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질의한 야당 의원은 “1~2점도 주기 아깝다”고 말했다. 과연 농민들은 농식품부에 몇 점을 주게 될까.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농산물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아 향후 농산물 수입을 더욱 확대하려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를 방관하는 것을 넘어 앞장서는 듯한 농식품부의 행보를 보면 참으로 암담하다.
미래 식량주권을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 하락 정책이 아니라 농업·농촌을 지키는 농민들의 소득을 안정시키고 생산기반을 유지시키는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무의미한 73번의 방문보다 농민들과의 제대로 된 한 번의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다.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농민들에게 힘이 되는 부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탈진 능선을 따라 펼쳐진 초록빛 바다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얼굴에 시름 대신 미소가 피어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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