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경북지역에 내린 우박으로 피해를 입은 사과
농작물재해보험 대상·품목·지원
범위 확대로 ''사각지대'' 해소해야
기후변화로 재해 범위·규모 확대에도
여전히 많은 부분 농업인에게 책임 돌아가
기후재난 극복·생산기반 유지 위해
재해예방 시스템 구축·농작물재해보험 정비 시급
농수축산신문 이문예 기자 2024. 7. 9
갈수록 이상기후가 빈번해지고 있다. 24절기에 따라 정확히 돌아가던 계절시계도 이제는 자꾸만 어긋난다. 더 이상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지을 수만은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재해는 이제 일상이 돼가고 있다. 재해 발생 양상도 다양해지고 피해 규모가 커지면서 농업 현장에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특히 재해 예방 대책 강화와 농작물재해보험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농업재해대책 마련을 위한 정책·개선 과제에 대한 현장 농업인들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듣고 개선방향을 모색해본다.
# 극한 치닫는 기상...폭염·폭우의 일상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농산물의 소비자물가지수(2020년=100)는 최고 138.4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농산물 가격이 치솟은 가장 큰 이유로는 지난해 연속적으로 이어진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지목된다. 지난해 1~2월 대설과 한파, 3~4월 이상저온, 5~9월 집중호우·태풍, 6월과 9월에는 우박 등 연중 쉴새 없이 몰아닥친 이상기후 여파로 농작물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이상기후는 실제 관측치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해 연평균 기온은 13.7도로 1973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평년의 12.5도보다 1.2도가 높았다. 연강수량도 174.6mm로 평년 대비 31.8%가 많아 역대 3위에 꼽혔다.
이는 단지 지난해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50년대 3.3회에 불과했던 태풍 발생 빈도는 2020년대에는 4회로 증가했고, 2000년을 기준으로 전후 20년 간의 시간당 80mm 이상 폭우일수는 2배로 늘어났다. 대구의 경우 서리일수가 2001년 2회에서 2022년에는 12회로 6배 증가했다.
기온도 큰 폭으로 올랐다. 일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의 연 최대치가 상승하고 폭염일수가 증가하며 한반도도 이제는 아열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는 모두 농업인 탓?
이같은 이상기후의 상시화는 계속해서 농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농업인들은 ‘기후위기를 넘어선 기후재난 시대’로 새로이 규정하고 정부에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재난 시대의 농업인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농업인들이 거리로 나서 이토록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데는 급증한 생산비와 더불어 재해로 인한 생산량 감소,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증가 등 농업인에게 지워지는 무게를 분산할 구조적 장치, 즉 촘촘한 재해 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자리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재해의 범위와 규모는 커져가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책임은 많은 부분 농업인에게 미뤄져 있는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농업재해로 농산물 생산량이 급감하고 이는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농업인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그럼에도 현 정부의 정책은 저율할당관세(TRQ)와 농산물 할인 행사 등 당장의 물가를 잡는 데만 천착할 뿐 기후재난을 극복하고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근본대책은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농업인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위치한 기후취약계층이지만 농업재해를 예방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등의 책임은 농가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며 “재해 예방을 위한 기반 정비는 물론 농작물재해보험의 질적 확대와 재해보상제도 도입을 통한 사각지대 해소 등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안한 저수지·방조제...기후변화 대응 능력도 떨어져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발간한 ‘재해가 농업과 식량안보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Disasters on agriculture and food security)’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농업 손실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농식품 시스템에서 재해 위험을 줄이고 농업 생산과 생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회복력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기술했다.
이 보고서는 농업의 위험을 예방하고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기적절한 선제적 조치의 중요성을 언급했는데, 우리의 재해예방 시스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있는 저수지, 양수장, 취입보, 관정 등 농업생산기반시설은 총 7만6787개이며, 이 중 30년 이상 된 시설은 57.8%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특히 저수지의 경우는 87.2%, 취입보와 집수암거·집수정은 각각 52.1%, 54.1%가 50년 이상돼 노후했다.
시설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3월 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건설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실시된 국토교통부의 인프라 총조사 결과 보수·보강이 필요한 D·E등급과 안전등급을 알 수 없는 저수지가 전체의 49.8%에 달했다. D등급은 주요 부재에 결함이 발생해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한 상태, E등급은 주요 부재의 심각한 결함으로 안전에 위험이 있어 즉각 사용 금지와 보강·개축을 진행해야 하는 상태를 말한다.
저수지가 물 이용 중심으로 설치돼 기후변화에 대응해 수위조절을 할 수 있는 수문 등의 반재시설이 미흡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22년 기준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2886개소 농업용 저수지 중 호우 등 이상강우가 발생할 시 담수를 방류할 수 있는 수문이 있는 저수지는 15.6%로 20%도 채 되지 않는다.
이수미 부소장은 “재해위험 저수지 정비를 비롯해 소하천 정비, 우수저류시설 설치 등 재해 예방사업에 따른 잠재 복구 비용의 절감 효과는 투자액의 3~4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농업 생산 기반의 정비는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며, 제대로 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재해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품목 편중·새로운 재해 대응 한계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농업재해 사후 대책의 재정비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크다.
현재로서는 농업인이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전받기 위해서는 농작물재해보험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농작물재해보험이 잠재 위험을 완화하고 경제적 부담을 경감한다는 보험의 기본 가치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작물재해보험 가입 농가는 54만8835호, 가입 면적은 63만7960ha였으며 가입률은 52.1%로 처음으로 50%선을 넘어섰다. 하지만 농작물재해보험 시행 22년째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가입률은 낮은 수준이며, 대다수 품목이 보험제도의 수혜를 받는 보편적 보험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보험 가입 품목의 편중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로 식량작물의 경우 2011년 가입률이 11.8%에서 2022년 55.4%까지 5배가량 늘었지만 식량작물 이외의 작물은 같은 기간 22.7%에서 38%로 11년간 15.3%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또한 지난해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이 50%를 넘은 품목은 12개에 불과했다. 다양한 농가·품목별 수요에 맞는 상품이 충분히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따른다.
현장에서는 까다로운 보험금 지급 기준으로 인해 실보장율은 낮아지면서 보장의 폭이 줄었다는 볼멘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병해충의 발생 등으로 자연재해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보험이 이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노승호 전북 부여군의원은 “현재의 농작물재해보험은 태풍, 우박, 호우, 강풍 등 과거부터 이어져온 자연재해 위주로 보상범위가 정해져 있고 새롭게 발생하는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농산물의 품질 하락 등과 같은 다양한 위험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보상 규정을 마련하고 신규 보험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보험의 공공성·보장성·선택성 강화해야
이에 기후재난 시대에 발맞춰 농작물재해보험의 대상 품목·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농가와 농산물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농가들은 이를 위해 피해율 산정기준 개선, 자연재해 등 불가항력에 의한 보험요율 상승 중단 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공공성·보장성·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공공성 강화는 농업재해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농업 위험 관리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농업인과 위험을 분담한다는 개념이다.
캐나다의 농업위험관리 프로그램의 경우 소득 감소나 수확 손실이 30% 이상이면 개인이 아닌 공공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스페인은 농작물재해보험청(ENESA), 미국은 위험관리기관(RMA)과 같은 전담기구를 설치해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보장성과 선택성 강화와 관련해선 자기부담비율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이수미 부소장은 “현행 자기부담비율은 10~40%로 다양하지만 평균 20%정도이고 자기부담 10%·15%형의 경우 수령 보험금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하는 등 가입이 제한된다”며 “자기부담비율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기보다 선택 제한을 완화해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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