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농업 ‘애그리워싱’ 막자] (중) 단계별 차등지원 필요
투기·정부지원 노려 법인 설립
시장 비효율·지속가능성 해쳐
무조건 막으면 양적 증대 저해
성장과정 따라 정책 차별화를
농민신문 기획=최소임 기자 2024. 7. 9
실제로는 농업과 관계없는 활동을 하면서 농업법인의 탈을 쓰고 보조금 지원, 세금 감면 등 농업분야의 혜택만 누리는 기업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이하 금융연구소)는 이러한 행태를 ‘애그리워싱’으로 정의하면서 애그리워싱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장기적으로 산업의 질적 성장을 저해한다고 봤다. 금융연구소는 최근 ‘애그리워싱 현상과 농산업 활성화를 위한 성장단계별 제도 방향에 관한 연구’를 통해 애그리워싱의 개념과 유형을 살펴보고 부작용 최소화 방안을 분석했다.
◆농업법인인 줄 알고 혜택 줬는데…알고보니 ‘애그리워싱’
애그리워싱이란 기업이 실제로 농업과 관련한 사업을 하지 않음에도 농업법인으로 위장해 농지 소유, 세제 감면, 보조금 등의 혜택을 누리며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뜻한다. 농업(agriculture)과 세탁(whitewashing)의 합성어다.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기업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소비자를 기만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설립요건과 달리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 농업법인들이 대표적 ‘애그리워싱’ 사례로 꼽힌다. 2017년 1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영농활동을 통한 매출 없이 부동산매매업으로만 약 1488억원의 매출을 발생시킨 경기지역 11개 농업법인이 감사원 조사로 2021년 적발됐다. 문제가 된 법인들은 농업경영을 할 것처럼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받고 농지를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농업과 타 산업을 융합한 형태의 농산업 기업이 새로운 유형으로 등장하고 있다. 농지 투기 등을 목적으로 한 고전적 애그리워싱 수법 외에도 꼼수가 여러 갈래로 확장된 셈이다. 주택시장 경기가 부진하자 일부 부실 건설기업이 스마트팜 보조금을 노리고 스마트팜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기술력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정보기술(IT)이나 의약품 관련 기업이 투자자와 정부를 속이고 농업 관련 성과를 과대 포장하는 사례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금융연구소는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투자자 기망행위가 전통농업에서 융합산업으로 진화할수록 더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애그리워싱 행태가 장기적으로 시장의 비효율을 초래해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애그리워싱 기업들이 시장의 다수를 차지할 경우 투자자들이 기업의 실제 목적과 수익 창출 구조를 판별하기 어려워져 농업법인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될 수도 있다.
◆산업 성장단계별 차별화된 정책설계 필요
애그리워싱 기업들은 농업법인에 제공되는 각종 보조금과 세제 감면 혜택을 노리고 산업에 진입한다. 따라서 각종 지원을 중단하거나 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하면 애그리워싱 행위 발생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로 농업분야에 기업 진입이 어려워질 경우 산업의 양적 성장이 저해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애그리워싱을 견제하려다 역설적으로 산업 전체의 성장이 가로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소는 산업 초기 단계에서 보조금과 같은 사전적 지원정책은 기업의 양적 성장을 견인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분석했다. 현재 농업과 타 산업이 융합된 형태의 농산업은 아직 성장 가능성만 보이는 산업 초기단계에 위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양적 성장이 우선돼야만 질적 성장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에 각종 지원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애그리워싱 기업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게 금융연구소 설명이다. 심재찬 금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실제 기업의 합리성을 근거로 한 신고전학파의 투자이론을 적용한 결과, 애그리워싱은 이윤극대화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에는 산업 성장을 위해 일부 부작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나, 장기적으로 산업 전체가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애그리워싱 행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소는 산업이 충분히 성장단계에 오른 다음부터는 보조금과 세제 감면 혜택의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조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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