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27년까지 체결규모 1위 도약’ 계획 발표…농업계 우려
농축산물 관세율 인하 등 추진
국내 보완책 강화 논의는 없어
사업 지속 지원 안이뤄져 문제
소득·경영안정화 방안 급선무
농민신문 하지혜 기자 2024. 7. 7
최근 정부가 2027년까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규모 세계 1위 국가’로 올라서겠다는 비전과 함께 농축산물 관세율 인하를 추진하는 내용의 ‘역동경제 로드맵’을 내놨다. 국내 농가의 소득·경영 안전망이 미비한 상황에서 경제 발전과 물가 안정을 이유로 농축산물시장 개방 확대에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정부가 3일 발표한 역동경제 로드맵에는 10대 과제가 담겼다. 그중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과제로 FTA 1위 국가를 달성하기 위해 하반기에 ‘통상정책로드맵(가칭)’을 수립·발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하는 59개국과 21건의 FTA를 체결해 FTA 체결규모가 가장 큰 싱가포르(87%)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통상정책로드맵에는 말레이시아, 태국, 일·중 등과 신규 FTA를 체결하고, 인도·칠레·영국·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과 FTA 업그레이드를 집중 추진하는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정부가 물가 안정 명목으로 농축산물 수입 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신규 FTA 체결과 개선 협상에 대한 농업계의 우려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칠레·인도 등 세계적인 농업강국과 FTA를 체결할 당시 우리 농업의 민감품목을 양허(관세 인하·철폐)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거나 양허를 미뤄온 만큼 개선 협상에서 농축산물시장 개방 수준이 높아질 공산이 크다. 한·영 FTA,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 협상에선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 등 비관세 무역장벽 의제도 다뤄질 예정이다.
여기에다 신규 FTA를 체결하거나 개선 협상을 할 때 농축산물 관세율을 인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정부는 역동경제 로드맵의 또 다른 과제로 핵심 생계비 절감을 목표로 해외 공급 등을 통해 먹거리 수급 안정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상기후의 영향과 국내 농업자원의 한계로 향후 적정 수준의 수입이 불가피한데 먹거리분야의 관세율이 다른 산업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식품원료·원자재의 관세율 조정 등 해외 공급을 위한 연구용역과 의견 수렴을 추진한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먹거리 관세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적정한지 등을 연구용역을 통해 전반적으로 살펴보려는 취지이며 관세율 조정 여부에 대해 결정된 건 없다”면서 “농업 보호 등 국내 생산 여건, 소비시장, 식품업계의 원료·원자재 조달 현황, 수입선 다변화 가능성 등을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농축산물시장 개방 확대를 중심으로 한 FTA 강화에 속도를 내는 반면 국내 보완 대책 강화방안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FTA 국내 보완 대책으로 품목별 경쟁력 제고, 근본적 체질 개선 등에 대한 투·융자 사업과 직접 피해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품목에 지원이 쏠리고 간접 피해 품목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지난해 FTA 국내 보완 대책 예산 가운데 75.1%가 축산물 경쟁력 제고사업에 편성된 반면 과수·원예 경쟁력 제고(4.9%), 농민 역량 강화 및 경영안정(9.3%), 신성장 동력 창출(9.6%) 사업의 예산 비중은 저조했다. FTA 피해보전직불제 예산 비중은 1.1%에 그쳤고, 이마저도 내년이 지나면 일몰을 맞는다. FTA가 체결되면 예상 피해에 따라 보완 대책을 수립하다 보니 일부 사업이 종료되거나 예산이 줄어드는 등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
전문가들은 거센 개방 파고 속에 농업 전반의 피해를 상쇄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한필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우리는 소수의 민감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축산물시장을 개방했고 관세도 즉시 또는 단계적 철폐 수순을 밟고 있는 데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번 정책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입뿐 아니라 기후변화, 인구감소에 따른 소비 위축 등 농가 경영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고려해 종합적인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경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FTA이행지원센터 영향평가팀장은 “최근 들어 농업을 둘러싼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의 증가와 글로벌 통상 환경의 변화로 농가 소득·경영 안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향후 FTA 국내 보완 대책은 피해 예상 품목 경쟁력을 제고하는 지원을 유지하되, 종합적인 농가 경영안정 지원 대책에 초점을 맞춰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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