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내년 예산 요구서 ‘0원’
할인 줄면 주민 선호 감소 우려
농·축협 마트 사용 규제도 문제
지자체, 인구수·경제규모 달라
도시·농촌 구분해 정책 펼쳐야
농민신문 괴산=황송민, 화순=장재혁, 의령=최상일, 대구=김다정, 이문수 기자 2024. 6. 30
행정안전부가 내년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역화폐 도입에 따른 경제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인데, 지역화폐를 지렛대 삼아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지방자치단체 불만은 갈수록 커진다. 여기에다 매출액을 기준으로 가맹점을 일부 제한하면서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지역화폐를 쓸 수 없게 된 곳은 주민 불편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사용처를 늘리고, 할인에 쓰일 예산을 확보해 지역화폐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2025년 지역화폐 예산 0원 현실 되나
지역화폐는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며 2017년 도입했다. 2021년 1조2522억원에 달했던 정부의 지역화폐 지원 예산은 이후 계속 쪼그라들었다.
2022년 7053억원, 지난해 3525억원으로 줄더니 올해 3000억원만 편성됐다. 지난해와 올해 예산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삭감을 반대하며 가까스로 복구됐다.
내년에는 해당 예산이 전액 삭감될 가능성이 커졌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국비 편성분을 전부 삭감한 2025년 예산 요구서를 기획재정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산이 삭감되면 지역화폐 순환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예산은 주로 지역화폐 할인액을 보전하는 데 쓰이는데, 예산이 삭감되면 할인율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지역화폐 사용을 활성화하고자 액면가의 5∼10%를 할인해준다. 할인율이 낮아질수록 지역화폐 선호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자체도 고심이 깊어진다. 전남 화순군은 현재 지역화폐를 10% 할인해준다. 깎은 금액은 국비와 지방비로 절반씩 충당한다.
화순군 관계자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할인율이나 총발행액을 줄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지역화폐는 자금의 역외 유출을 막아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분명한데 지원이 끊길 수도 있다니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시청 관계자는 “지역화폐 장점이 널리 알려지며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는 것에서부터 자녀 학원비로 쓰기까지 활용범위가 넓었다”면서 “내년 국비 지원을 중단하면 지역경기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식 민주당 의원(경기 용인갑)은 “일부 지자체에선 벌써 국비 지원이 끊길 것을 예상해 지역화폐 예산을 잡지 않거나 삭감하고 있다”면서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어려움에 처한 서민과 소상공인의 버팀목이 될 지역화폐 예산을 원상 복귀시키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농협에서 못 쓰면 농촌에선 무용지물
지역화폐 사용처를 제한하는 문제도 꾸준히 도마 위에 오른다. 행안부는 지난해 지역화폐 지침 개정안을 각 지자체에 전달했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높인다는 이유로 연 매출 30억원을 초과하는 매장에서 쓸 수 없게 제한을 둔 것이다.
이 개정안에 따라 연 매출이 30억원을 넘는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서 지역화폐를 쓸 수 없는 난맥이 발생했다. 생활문화 기반이 턱없이 부족한 농촌에선 하나로마트 외엔 장을 볼 수 있는 곳이 마땅찮은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 사는 박병각씨(66)는 “면내 농협 하나로마트와 영농자재센터를 빼면 필요한 물품을 살 만한 곳이 거의 없다”면서 “지역화폐로 원하는 물건을 사려면 차를 타고 20여분 떨어진 읍내로 가야 하는데 왜 농협에서 지역화폐를 못 쓰게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배상균 대구 칠곡농협 조합장은 “농·축협 금융점포에서 지역화폐를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일부 지자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용할 곳도 별로 없고, 구하기도 어려우니 지역주민이 지역화폐를 외면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정규 경남 의령군 부림면 막곡마을 이장은 “바쁜 영농철에는 그나마 가까운 하나로마트에 들러 생필품과 영농자재를 한꺼번에 구매해 시간을 절약하곤 하는데 사용처 제한이 있는 지역화폐는 계륵”이라며 “마트가 많은 도시와 그렇지 못한 농촌을 구분해서 지역화폐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행안부 간 정책 엇박자도 지적받는다. 지역화폐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행안부와는 달리 중기부는 최근 온누리상품권 사용 가능 업종을 확대하고 지난해 발행한 2조원어치 상품권을 올해 5조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보호라는 목표가 같은 두 부처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백종만 경기 시흥시 경제국장은 “인구수와 경제규모가 천차만별인 지자체에 가맹점 제한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면서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서 사용을 못하게 되면 지역화폐 전체 사용률이 떨어지고 종국에는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도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안부 지역금융지원과 관계자는 “예산이 줄면 지역화폐 할인율이 떨어져 수요가 줄 수 있다”면서도 “예산 전액을 삭감하겠다는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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