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조합장 미담(米談) 포럼
5만t 매입 정부 결정은 미흡
‘2022년 값 폭락’ 재연 우려
전략직불 단가 인상 등 필요
농민신문 하지혜 기자 2024. 6. 30
정부가 최근 추가적으로 내놓은 쌀값 안정 대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일고 있다. 당초 산지에서 촉구했던 2023년산 민간 재고 15만t(이하 쌀 환산량 기준) 가운데 정부가 5만t만 사들이기로 하면서 쌀값이 더 곤두박질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농협경제지주가 6월27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개최한 ‘조합장 미담(米談) 포럼’에서도 이같은 지적이 잇따랐다. 이날 ▲쌀값 안정화 및 과잉 생산 대응방안 ▲현재 재고 감축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미곡종합처리장(RPC)·비RPC 농협 조합장 200여명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추가 대책을 요구했다.
정길수 전남 영광농협 조합장은 “쌀값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으면 지금 사태까지 오지도 않았다”며 “정부의 추가 대책 발표에도 재고를 쌓아두고 있는 농협의 불안감은 여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5월말 기준 농협 재고는 66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만2000t(47.3%) 많다. 여기서 6∼8월 최대 판매 가능량 48만t을 제하면 9월말 재고는 적어도 18만t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년 동기 대비 15만t 많은 물량이다. 이번에 정부가 5만t을 매입해도 최소 13만t이 고스란히 창고에 남을 공산이 크다.
2022∼2023년 역계절진폭(단경기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하락하는 현상)으로 32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본 농협은 올해도 재고 부담과 판매 부진으로 악몽이 재연될 것을 우려한다. 박정문 전남 해남 산이농협 조합장은 “불과 몇년 전에도 23억원 넘게 적자를 봤는데 지금도 벼가 쌓여 있으니 밤잠이 안 온다”고 토로했다. 김종욱 충남 청양 화성농협 조합장은 “한해 1억원 수익도 어려운 농촌농협이 벼 건조저장시설(DSC)로 10억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며 “이제 농협은 쌀 문제에 따른 경영 손실로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을 불신하는 목소리도 잇따랐다. 김철규 해남 문내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수확기 정부가 산지 쌀값 20만원(80㎏ 기준) 보장을 약속하면서 농가 물량을 높은 가격에 매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와 정부가 쌀값 하락을 나 몰라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김학수 경북 구미 선산농협 조합장은 “(매년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면) 정부가 쌀을 책임지고 농협은 도정·판매·영농 관리에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쌀산업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들도 제시됐다. 김기동 전북 군산 회현농협 조합장은 “올해부터 가루쌀(분질미)에 대한 전략작물직불금 지급단가가 인상되면서 지역의 가루쌀 재배면적이 지난해 대비 3배 늘었다”며 “농가들은 소득에 따라 작물을 재배하는 만큼 직불금 단가를 인상하면 벼 대신 타작물 재배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전남 장흥 관산농협 조합장은 “쌀값 안정을 위해 RPC들의 출하와 유통을 중앙에서 조절할 수 있는 체계의 마련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오늘 미담 포럼의 취지는 RPC·비RPC를 비롯한 전체 벼 매입농협의 조합장과 RPC 장장·대표, 관련 계열사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쌀값 안정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발전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라며 “벼 매입농협의 어려움을 잘 아는 만큼 쌀 수급·가격 안정과 벼 매입농협의 경영안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추가 대책 발표에도 산지 쌀값은 또 내림세를 탔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25일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80㎏들이 한가마당 18만6376원으로 전순기 대비 0.4%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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