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현재 전순기보다 0.4%↓
정부 “검토할것” 말만 되풀이
산지유통업체들 손실 ‘눈덩이’
수확기 벼 매입대란 우려 커져
농민신문 하지혜 기자 2024. 6. 13
산지 쌀값 하락세가 단경기(7∼9월)를 코앞에 두고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쌀값 안정 대책을 추가적으로 마련하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며 수수방관하는 분위기다. 대책이 늦어질수록 올 수확기 벼 매입에 대란이 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지 쌀값은 지난해 수확기부터 8개월째 추락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일 전국 평균 산지 쌀값은 20㎏들이 한포대에 4만6968원으로 전 순기보다 0.4% 하락했다. 80㎏들이로 환산하면 18만7872원이다. 지난해 수확기(10∼12월) 20만2797원보다 1만4925원(7.4%) 떨어졌다. 사실상 단경기 역계절진폭(단경기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하락하는 현상) 발생이 현실로 다가왔다.
산지에선 2월말부터 정부가 추가적인 쌀값 안정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2월초 농협 등 민간 신곡 재고 10만t(이하 쌀 환산량 기준)을 해외원조용으로 돌리기로 결정하고도 쌀값 하락세가 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해외원조용 물량 활용으로 시장 물량이 부족해 5월이면 쌀값이 반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지 쌀값은 단경기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하락하는 데다 최근에는 낙폭이 커지는 모양새다.
농협 등 산지유통업체는 농협이 역대 최대치로 떠안고 있는 2023년산 재고 물량 중 15만t 이상을 정부가 매입해야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5월말 기준 농협 재고는 66만t으로 전년 대비 21만t(46.7%) 많다.
산지의 아우성에도 정부는 “동향을 점검하며 적정 계절진폭(단경기 쌀값이 전년 수확기보다 높은 현상) 형성을 위한 추가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말만 수개월째 되풀이 중이다.
산지에선 정부의 수급관리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보형 농협 벼전국협의회장(충남 홍성 광천농협 조합장)은 “정부가 지난해 수확기 쌀값을 20만원(80㎏들이 기준)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농협 매입가에 관한 농가의 기대치가 높아져 계획했던 것보다 7000원(40㎏들이 기준) 더 주고 나락(벼)을 매입했다”며 “그런데 수확기가 지나자 쌀값 하락으로 산지유통업체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농협들은 지난해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전체 쌀 생산량의 54.1%를 떠안았다”며 “당시엔 사후격리를 약속했던 정부가 이제 와 딴소리를 하면 앞으로 정책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성토했다.
2021년산 쌀값 폭락 사태 때처럼 정부 대책이 더 늦어질 경우 가격 하락과 산지유통업체의 손실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김용경 광주전남농협통합미곡종합처리장(RPC)협의회장은 “8월이면 조생종 벼가 나오는 데다 7∼8월은 쌀 소비가 급감하는 시기라 지금 상태론 쌀값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여전히 민간업체가 조곡 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고, 헐값에 나락을 팔면 적자가 커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지 농협들은 재고 물량이 수확기 전까지 지속될 경우 올해산 벼를 매입하지 못하거나 매입 물량 축소, 매입 가격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3년째 누적된 적자를 감당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농협 RPC·건조저장시설(DSC)의 2022∼2023년 적자는 3200억원에 달한다. 쌀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소화하는 농협의 매입 차질은 농가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재면 전남 영암낭주농협 조합장은 “정부에 대책을 강구하라는 요구는 단순히 농협 적자를 막아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쌀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농촌소멸을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전남도는 충남도와 대정부 건의문을 전달한 데 이어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문금주(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주철현(전남 여수갑) 의원실을 찾아 쌀값 대책을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을 건의했다. 두 의원 측은 “농민 생존권 보장과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현실성 있는 정부의 15만t 시장격리만이 쌀값을 반등시킬 수 있는 대책임을 인지하고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통해 정부에 강력히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달까진 대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시기와 매입규모는 불투명하다.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농협과 소통하고 있고 대책이 예산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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