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산물 수급 문제와 농산물 도매시장의 관계를 고찰하고 중국·일본의 농산물 유통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이목을 끌었다.
한국식품유통학회와 도매시장유통포럼은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 소재 aT센터에서 ‘한·중·일 도매유통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농산물 수급 문제 해결에 이바지할 수 있는 농산물 도매시장의 기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농산물 수급불안에 대응한 도매시장의 기능과 미래’ 발표를 통해 그동안 농산물 도매시장은 농산물 중개에만 치중, 통과형 물류 기능만 수행해 농산물 수급 조절 역할이 미비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앞으로 농산물 도매시장이 농산물을 저장·입고해 가공·포장까지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재고형 물류시설로 과감히 전환해야 농산물 수급 조절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도매법인의 핵심적인 역할인 위탁판매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전후방 거래 상대자와의 연계성 강화를 위해 제삼자판매 허용 등 농산물 유통 정책의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대형유통업체들과 온라인유통업체 등의 독점적 시장 형성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영향력 발휘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산지 생산자단체와 농산물 도매시장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농산물 도매시장의 한계를 지적하며 농산물 수급 조절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장문철 합천유통 대표는 “최근 농산물 수급과 관련해 농산물 도매시장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되지만 농산물이 생산되고 소비지까지 이동하는 각 과정에서 당연히 비용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기상에 따른 작황”이라며 “다만 앞으로 정가·수의매매가 제대로 운용되도록 노력하고 온라인도매시장을 통해 기존의 전송거래 등 물류의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세복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전무 역시 “현재 농산물 도매시장은 극히 제한적인 수급 조절 기능만을 갖고 있어 사전에 농산물 수급의 균형을 맞추거나 가격 급등락을 방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도매법인의 매수거래를 허락한다면 지금의 전속거래 경향이 더 발전해 계약재배로 나아가고 도매시장이 농산물 수급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정부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식량 위기에 대해 다소 극단적인 모습으로까지 대응하고 있다는 발표에 참석자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호소카와 마사시 도매시장정책연구소장의 주제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농림수산물 수입액은 1998년 1341억 달러에서 2021년 4324억 달러로 20여 년간 3배 이상 성장했다. 더불어 주요 수입국의 변화도 두드러져 1998년 비중이 3% 미만이던 중국이 2021년 전체의 29%가량을 차지하고 같은 기간 일본은 40%에서 18%, 한국은 3%에서 7%로 비중이 변화했다.
호소카와 소장은 “일본 정부는 앞으로 전 세계적인 식량 쟁탈전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올해 ‘식료공급 곤란사태 대책법안’을 상정, 식량 수입 중단 등 위기 발생 시 농산물 생산자에게 채소·과일·화훼 등의 재배를 제한하고 미곡과 서류 중심의 생산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했다”며 “더불어 농림수산성에서 위기상황 시 소량의 쌀과 감자·고구마 등으로 구성된 제한된 식단까지 일반 국민에게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이날 세미나에서는 농산물 생산 단계에 산적한 문제에 대한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농협·산지유통인 등 규모화된 주체들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중소규모의 농업인들은 도매시장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 산지조직화가 시급하다”며 “새로운 소득 작목 개발과 보급에도 노력해 산지 상황에 따라 농가에서 적절한 작물을 선택해 재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다만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10년, 20년 전에도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이냐는 걸 풀지 못해 여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