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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보험이지만 민영보험사가 ‘독점’ 운영…한계 분명한 상황
일각선 업무 할당으로 피해율 유리하게 관리한다는 의혹도
업무 배정 실적 등 보고 받지만 정부 차원 관리·감독 어려워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2024. 5. 26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보험사가 정책보험을 독점적으로 운영 중인 점, 이에 따라 보험사 입장에서 필연적으로 손해를 줄이려 할 수밖에 없는 점 그리고 보험사 손해율과 밀접한 보험금 지급의 기준(손해평가)이 보험사 업무 지시로 이뤄진다는 점은 보험 운영 전반의 공정성에 의혹과 의문을 제기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농작물재해보험과 이를 운영 중인 단 한 개의 보험사, NH농협손해보험(농협손보)이 앞선 예시에 해당된다. 농협손보는 정책보험인 농작물재해보험을 판매하며 보험금 지급에 절대적인 손해평가 운용 주체기 때문이다. 정부가 순보험료의 50%와 운영비 전액을 보험사에 지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보험금이 가입자에게 많이 지급될 경우 보험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이는 정책보험인 농작물재해보험이라고 예외일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가 2005년 거대재해 발생 시 발생하는 보험사의 손실을 국가가 인수·보전하는 ‘국가재보험제도’를 도입했지만, 국가재보험제도는 보험사 손해율이 기준치를 넘어설 때만 그 초과분을 국가가 조성한 농어업재해재보험기금으로 보상해 준다. 국가재보험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기준치를 넘지 않는 큰 손해율은 보험사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사실상 ‘고용 관계’와 다름없는
보험사와 현장의 손해평가사
「농어업재해보험법」에 근거한 국가 자격인 손해평가사 제도는 농작물재해보험 도입 이후 10여년이 지난 2015년에야 마련됐다. 그 사이 전문인력이 부재했던 까닭에 손해평가는 손해사정사 또는 손해평가인(오랜 기간 농업에 종사했거나 관련 업무 등에 종사한 자로 농협손보에 위촉돼 손해평가 업무를 수행)을 통해 이뤄진 이력이 있다. 손해평가사 배출이 시작됐음에도 초창기 손해평가사만으로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엔 인력이 부족했던 까닭에 지금까지도 현장에선 손해사정사와 손해평가인, 손해평가사 등이 산발적으로 업무를 맡고 있다.
자격시험 도입 10년 차에 접어든 현재 손해평가사들은 (사)한국농어업재해보험협회(농재협)과 (사)한국손해평가사협회(한손협), 손해사정법인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양 협회 등에 따르면 손해평가 업무 배분 비율은 한쪽으로 확연히 치우쳐 있는 실정이다.
양 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농작물재해보험 손해조사비 집행 명세를 근거로 “농협손보는 지난해 법인에 양 협회보다 두 배 많은 직접조사비를 집행했다. 현장에서 활동 중인 양 협회 소속 손해평가사 수가 법인 소속보다 월등히 많은 데도 불구하고 손해평가 업무 일감 대부분이 법인에 몰리고 있다는 의미다”라며 “손해평가 조사비는 순보험료에 해당되고 순보험료의 50%는 정부가 정책보험을 운영하는 보험사에 지원하는데, 농협손보는 조사 수당이 약 1.6배 정도 많은 법인 소속 평가사에게 일감을 더 많이 몰아주며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물론 피해율을 유리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양 협회 측의 문제 제기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작물재해보험은 정책보험이지만 민영보험사가 이를 운영하고 있어 보험계약자는 보험사와 농민이다. 이에 여타 자동차보험 등과 동일하게 보험사가 상품 판매와 손해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보험사 권한이다”라면서 “다만 농작물재해보험이 정책보험이기 때문에 보험사가 손해평가 업무 배정 기준을 어떻게 삼고 있는지 실제 현장에 업무가 어떻게 분할되고 있는지 정도는 정부도 파악하고 있으며, 손해평가가 제때 잘 이뤄지고 있는지 등도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을 통해 점검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농식품부 관계자는 “풍수해보험이나 가축재해보험 등도 보험사가 손해평가를 직접 운용하고 있다. 물론 여러 민영보험사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직접 농작물재해보험 손해평가 업무 배정을 법인에 몇 퍼센트, 협회에 몇 퍼센트 하라고 보험사에 지정할 수도 없는 문제다”라며 “피해율을 높게 주는 협회나 손해평가사에게 업무를 배정하지 않는 등 보험사가 불이익을 준다는 의혹과 지난해처럼 보험사가 직접 몇 퍼센트 이하로 피해율을 평가하라는 제보 등은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답변을 하기 마땅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현실 여건과 민영보험사가 정책보험을 운영하는 구조 등의 이유로 보험사의 손해평가 업무 배정을 전수조사하거나 이를 감독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어디서도 유례 찾아볼 수 없는,
보험·손해평가의 ‘독점’ 운용
지난 202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재해보험의 손해평가제도 발전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어디에서도 농작물재해보험 판매와 손해평가를 다른 주체 참여 없이 독점 중인 경우가 없다. 높은 손해율로 보험사가 농작물재해보험 상품 판매에 참여하지 않는 배경이 있지만, 그렇다고 단 한 개의 민영보험사가 어떠한 경쟁 없이 보험을 운영하는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이다.
대부분 우리와 유사하게 민영보험사가 손해평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여러 보험사가 협회 등을 구성해 서로를 견제·감시하고 협회 차원의 손해평가인 교육·관리 및 업무 적정성 여부 등을 따지는 식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경우, 재해보험을 판매 중인 개별 민영보험사와 보험보상협회가 참여하는 농작물재해보험 사업자 연합체(Agroseguro)에서 손해평가인 관리 및 손해평가 실시, 보험사 감독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의 손해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민영보험사가 손해평가를 담당하고 있지만, 미국 농무부(USDA) 산하 위험관리청(RMA)이 매뉴얼을 통해 손해평가 기본 절차와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으며, 민영보험사들이 설립한 국가작물보험서비스(NCIS)는 손해평가 분석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역별 농업공제조합과 공제연합회를 통해 손해평가와 공제금 지급이 이뤄지는 일본은 조합원의 후보 선출 후 조합장이 총대의 승인을 얻어 손해평가원을 임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조합 소속 손해평가원이 손해평가 현지조사를 실시하면 연합회를 거쳐 국가가 이를 승인하는 구조다.
한편 단 한 개의 보험사가 단독으로 농작물재해보험을 운영하며 손해평가 업무까지 도맡고 있는 우리의 경우, 해당 보험사의 손해평가 운용 방식 전반에 대한 감시·조치를 여타 보험사는 물론 정부조차 할 수 없는 여건이다. 정부는 자격제도를 운영 중인 손해평가사에 대한 관리·감독만 실시할 뿐이다. 심화되는 기후재난에 제대로 된 농업 안전망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에 민영보험사가 운영 중이나 ‘정책보험’인 농작물재해보험의 공정하고 상식적인 운용에 농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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