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물가당국은 사과와 대파 가격 때문에 마음을 많이 졸였다. 5월 들어서니 농산물 물가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조금 식기는 했는데, 식료품과 외식 물가가 높다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갑이 얇은 소비자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어찌해서 수많은 품목 중 오른 것만 콕 찍어 이야기하는지 섭섭하기도 하다. 농민 입장에서는 가격이 폭락할 때도 이 정도로 관심을 보여줬다면 덜 서운할 것이란 생각도 든다.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이 조금만 차이가 나도 가격이 널을 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품목을 가격탄력성이 낮다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가격이 많이 움직여도 거래 물량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쌀값이 아무리 싸도 밥을 두그릇 먹지 않고, 아무리 비싸도 밥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수요가 비탄력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공급도 마찬가지다. 1월에 사과가격이 두배가 됐다고 갑자기 사과를 한번 더 딸 수 없어 공급량에도 변화가 없다.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하락할 때 공급량을 줄이고, 가격이 폭등하면 공급량을 신축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수요나 공급이 탄력적인 상품은 시장에서 물량이 저절로 조절되지만, 농산물은 가격탄력성이 낮아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시장가격을 잘 관찰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물량을 적절히 밀고 당기고 하는 보조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자유무역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 해외시장을 이용하자고 주장한다. 가격이 내릴 때 수출하고 오를 때는 수입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내와 해외시장을 묶어서 거래량을 키우는 효과가 있고, 이론상으로는 가격탄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아무리 무역이 자유로워도 국내시장 형편에 맞게 즉각 수출입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검역문제가 전혀 없는 품목도 수입하려면 거래선을 찾고 가격을 협상하고 운송까지 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보니 막상 수입품이 도착하면 이미 국내 가격이 안정된 이후라서 오히려 가격을 폭락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주목하는 것이 도매 직전 또는 출하 직후 저장업의 역할이다. 지금도 도시 인근에는 소위 ‘큰손’들이 가진 창고가 많은데, 이들은 출하량을 조절해 이익을 누린다. 아쉽지만 생산자는 이미 관여할 수 없는 단계다. 이런 유통이익을 생산자가 누리면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안으로 농협 등 생산자가 운영하는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가 있다. 소규모 생산자들이 출하 직후 저장·포장 등을 같이 하면 평소 가격 교섭력을 높일 수 있다. 가격이 불안할 때는 출하조절로 가격을 안정시키고, 생산자가 유통이익도 누릴 수 있으므로 일석이조다.
하지만 APC 운영이 성공하려면 생산자가 명심할 조건이 있다. 운영은 농산물 유통을 잘 아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품질관리는 필수다. 품질관리사가 객관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등급별로 같은 가격을 주는 정산체계를 갖춰야 한다. 같은 등급이라도 거래일자나 상대방에 따라 출하가격이 다르므로 이를 보정할 수 있는 규약도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기술을 적용한 APC가 늘어나면 관리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자가 서로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계약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다. 가격이 좋을 때는 제멋대로 출하하고 판로가 없을 때면 APC에 떠넘기는 회원은 제명해야 뒤탈이 없다. 회원간의 강한 신뢰 형성이 성공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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