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유통학회, 정책 세미나
도매시장 수급조절 기능 위해 ‘재고형 물류기지’ 과감히 전환
유통주체 도매법인·중도매인이 재고관리·저장·포장 판매도 해야
법인 경영 연속성 보장 등 논의도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 기자 2024. 5. 24
지난해부터 이어진 농산물 가격 상승을 두고 도매시장법인 역할에 대한 비판이 나온 가운데, 수급조절 등 도매법인의 공적 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도매법인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도매법인은 관련법에 의해 현재 시장 출하 농산물에 대한 위탁거래 업무만 가능한 상황으로, 규제 완화를 통해 매수판매 기능까지 부여해야만 일정 수준의 수급조절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한국식품유통학회는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학회 회원 및 농산물 유통 전문가, 도매시장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일 도매유통’을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중·일 도매시장 유통 현황 및 정책적 대응 특성을 비교해 보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최근 정부가 도매시장과 도매시장법인을 비롯한 농산물 도매유통에 손을 대는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 발표 이후 진행한 자리였던 만큼 국내 도매시장 기능에 대한 논의가 중심을 이뤘다.
이날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농산물 수급불안에 대응한 도매시장의 기능과 미래’라는 제목의 첫 번째 주제발표를 통해 농산물 수급 불안정이 더해가는 상황에서 국내 도매시장이 수급조절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매시장법인들이 단순한 판매중개 역할에서 벗어나 사업 다각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률 연구위원은 “도매시장은 그동안 단순한 도매거래중개 기능과 시장으로 출하한 농산물을 경매,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소비지에 분산하는 통과형물류 기능에 치중해 농산물 수급조절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다”라며 “도매시장에서 수급조절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재고형 물류시설로의 과감한 전환과 블록형 광역도매권역 설정을 통한 권역 내 도매시장 협력체계 구축, 도매시장 유통종사자인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역할 및 기능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매법인의 경우 시장 출하 농산물의 단순한 판매중개 역할에서 벗어나 위탁판매(경매, 정가수의매매) 사업 영역은 유지·보완·발전시키면서 연관 사업을 다각화하고, 유연화 해야 한다는 게 김 연구위원의 의견이다. 구체적으로는 도매시장법인에 대한 ‘매수판매’ 기능 부여를 언급했다.
김병률 연구위원은 “도매시장을 수급조절이 가능한 재고형 물류기지로 전환하면 도매시장 유통주체인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이 시장 출하 농산물을 재고관리하고 저장, 포장 판매할 수 있도록 매수판매 기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본은 도매법인의 매수판매 비중이 40% 정도로, 도매법인의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 거래 촉진을 위해서도 제도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수판매 허용은 그동안 도매시장법인에서도 수차례 정부에 요청해 왔던 부분으로, 이번 세미나에서도 다수의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이 김병률 연구위원의 의견에 공감대를 나타냈다.
오세복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전무는 “도매시장이 자체적인 수급조절 기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농산물에 대한 사전 수급 균형을 맞춘다거나 또는 수급이 불균형해져서 가격이 급등락 할 때 도매시장 단계에서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탁판매 원칙으로 인해 도매시장에서 출하자가 맡기는 방식으로만 농산물 판매를 하다 보니 도매시장법인들이 많은 물량을 유통하면서도 조절 기능은 갖고 있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매시장법인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규제 완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매수금지 규정을 폐지하면 도매시장법인 같은 전문 유통회사들이 수급조절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고, 산지와의 계약 거래와 예약 거래 확대, 산지와 도매유통 경로의 계열화 진전 등 수탁판매 원칙 하나만 손질해도 이런 효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아울러 위태석 농촌진흥청 박사(수출농업지원과장)도 “지금 도매시장법인에 대해서 농산물이 비싸든 싸든 수수료만 받고, 위험은 하나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수수료 상인은 위험을 부담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라며 “도매시장법인이 농산물 수급조절에 적극적이지 않고 위험 회피적인 영업을 하는 것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라면 매수판매 허용 등 제도적으로 수급조절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준 다음 비난을 하는 게 맞다”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이날 세미나에서는 도매시장법인 재지정과 관련해 도매시장 시설 및 인프라에 대한 민간 영역의 투자가 확대될 수 있도록 도매시장 법인에 대한 경영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도매시장법인 평가의 경우 안전한 농산물 공급과 판매의 장 마련 등 도매시장법인 고유 기능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한편, 이 같은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대해 곽병배 농림축산식품부 유통정책과 사무관은 “매수금지 규정 해제, 도매시장법인 지정 유효기간 폐지 등 여러 가지 규제를 완화하는 부분은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합의와 제도 개선에 대한 안전장치가 확보돼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상권과 소비자 구매 패턴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농산물 유통체계를 가지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는 만큼 도매시장 안에서도 농산물을 소분·재포장 해 상품화 하는 기능까지 넣어서 기능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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