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업’ 보호 대신 할당관세
한국농업신문 연승우 기자 2024. 5. 15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할당관세 카드로 또다시 꺼내 들었다. 생산량이 감소해 가격이 오른 농산물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할당관세란 일정 물량의 수입품 관세율을 일정 기간 낮춰주는 제도이다.
정부가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어 지난 10일부터 배추, 포도, 코코아두, 양배추(6000톤), 당근(4만톤), 마른김(700톤), 조미김(125톤) 등 농수산물에 대해 할당관세를 새로 적용한다고 밝혔다.
물가 안정을 이유로 할당관세를 도입하는 것은 현재 우리 농업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는 겨울 배추 출하가 끝나고 봄배추가 나오는 시점이며, 포도는 지금 제철이 아니다. 양배추, 당근 등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면 할당관세로 수입농산물을 들여오기 때문에 농가들은 생산 의지를 잃는다.
농산물 가격 상승과 하락이 반복하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거미집이론으로 설명을 한다. 거미집이론은 장기적으로 가격의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적정한 생산량과 적정가격을 형성한다는 이론이다. 거미집이론이 국내에서 성립되지 않는 것은 지나친 정부의 개입이다.
농가들에 정확한 농산물 관측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생산량 관측을 오염시키는 것이 바로 ‘수입농산물’이다.
여기에 이상 기후로 인한 농가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상 기후로 올해 햇마늘은 2차생장장애를 겪어 수확량이 감소해 농가들의 손해가 눈에 보이고 있다. 여기에 밀은 잦은 비로 인해 붉은곰팡이병이 창궐해 30~40% 이상 생산이 감소할 수도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물가 안정도 중요하지만, 농업생산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농산물 가격이 수입으로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국내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입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1980년 우리나라에서 극심한 냉해로 쌀 생산량이 감소해 외국에서 쌀을 수입하려 하자 다국적 곡물 기업들의 단합으로 쌀값이 2배로 오른 사례가 있다.
양파, 마늘, 포도 등이 수입이 돼도 국내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가격을 외국기업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무분별한 할당관세를 남발하게 되면 양파, 마늘 등 생산이 감소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국민에게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며, 이는 헌법에도 명시돼 있다. ‘농업’을 보호하기 위한 예산을 아까워하며 할당관세를 남발한다면 이 나라에 농업은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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