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금(金)사과’ 논란을 시작으로 농산물 가격이 고물가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농산물 수입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업계는 수입 의존 정책이 오히려 국내 생산기반을 무너뜨려 식량안보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기상 여건 변화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물가 변동에 대응하려면 수입 확대 등 공급처 다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기상 여건은 단기적으로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려 소비자물가를 상승시키지만,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4월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농산물 가격이 급등한 배경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고 그 대책으로 수입 확대를 언급한 바 있다. 경제지 등 언론매체들도 농산물 수입을 물가안정의 대안인 듯 제시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정부는 이미 물가안정을 이유로 여러차례 농산물 수입을 늘려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연초 21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했고, 지금까지 관세 인하 품목을 점진적으로 확대했다. 대형마트를 통한 과일 직수입도 허용했다.
그 결과, 과일 수입량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례로 바나나와 오렌지 수입량은 각각 5·3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농식품부는 “6월까지 수입 과일의 할당관세를 유지하거나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혀 당분간 농산물 수입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5∼6월 국산 과일까지 본격 출하하면 공급 과잉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농식품부는 최근 브리핑에서 “4월 들어 기상 여건이 개선되면서 참외·수박·복숭아 등 작황이 좋아 수급이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주도로 저렴한 수입 과일을 대량 공급하는 물가대책이 유형화하면서 국산 과일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이는 농가의 생산 의욕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국내 식량자급률과 식량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농산물 가격 급등은 공급 부족이 원인인 만큼, 수입 확대 같은 땜질식 처방보다는 안정적인 생산·공급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이상기후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반복되면서 농가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면 국내 생산기반 붕괴가 불가피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생산기반 조성을 목표로 정책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