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농안법 개정 논란
한국농어민신문 서상현 기자 2024. 5. 3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주곡인 쌀의 자급기반 마련이나 주요 농산물에 대한 안정적 생산기반의 구축이 중요하다. 야당이 양곡법 및 농안법을 개정해 쌀을 포함한 주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을 일부 보전하려는 것도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다만, 정부의 재정이 특정품목에 편중될 경우 경지이용의 왜곡을 초래하거나, 식량자급률을 오히려 하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양곡법 및 농안법 개정안의 쟁점과 농민단체 반응 등을 짚었다.
# 법 개정 추진 이유
야당이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농산물의 가격변동성이 커져서 농업경영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판단에서다. 2000년 이후 실질쌀값이 30% 이상 하락해 변동성이 확대됐고, 주요 채소류도 최근 20년 사이 평균 등락률이 15~40%나 된다는 것이 이호중 더불어민주당 전문위원의 분석이다. 반면, 채소가격안정제나 수입보장보험과 같은 정부대책은 농가경영위험을 방지하기에는 부족해 ‘농산물 가격안정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쌀 및 주요 농산물에 대해 기준가격을 설정하고, 시장가격이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의 일정비율(예 85%)을 보전하자는 것이다. 또, 대상품목의 선정, 기준가격의 설정, 차액보전비율의 설정 등은 위원회를 설치해 결정하자는 내용도 있다. 쌀의 경우 위원회가 정한 기준 이상으로 폭락하거나 폭등하는 위기상황 시 시장격리, 정부관리양곡 판매 등을 시행하되 시행기준은 정부에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 양곡법 개정안 쟁점 ‘쌀 초과생산량 의무 매입’
민주당 “식량안보 측면서 비용 부담해야”…정부 “재정 부담·공급 과잉 우려”
양곡법 개정안은 쌀의 의무매입, 농안법 개정안은 기준가격을 정해 시장가격과의 차액을 보전하는 가격안정제가 쟁점이다.
양곡법 개정안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미곡가격의 폭등이나 폭락과 같은 위기상황 발생 시 양곡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대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해놓았다. 미곡의 초과생산량을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매입하거나 정부양곡관리를 판매하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식량안보의 핵심품목인 쌀의 경우 평상시 가격안정제도로 농가손실을 보전하고, 가격의 폭등이나 폭락 등 위기상황에는 정부가 재량권을 갖고 조치할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또, 쌀 의무매입제에 따른 재정은 식량안보 측면에서 부담해야할 사회적 비용이란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반면, 농식품부는 가격안정을 위한 양곡의 수급관리와 관련해 ‘양곡수급안정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로 돼 있는 것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로 개정하는 것을 ‘남는 쌀 의무매입’이라 해석한다. 이렇게 될 경우 공급과잉 심화와 쌀값 하락으로 이어져 쌀 농가의 소득안정을 오히려 저해할 것으로 우려한다. 쌀 소비는 감소하는데, 의무매입으로 판로나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을 없애면 강력한 쌀 생산 동기를 부여해 공급과잉 상황이 심화되고, 쌀값도 특정가격대에서 하방정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쌀 의무매입은 쌀 격리를 위한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미래농업에 대한 투자나 타 품목에 대한 지원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한다. 특히, 수입의존도가 높은 콩, 밀 등으로 재배작목을 전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식량자급률 제고 측면에서도 제약 요인이란 설명이다.
# 농안법 개정안 쟁점 가격안정제 시행, 기준가 이하 폭락 시 차액보전
공급과잉·수급불균형 방지…정부 “기준가 높은 품목 가격하락·과다 재정 소요”
농안법 개정안은 양곡, 채소, 과일 등 주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 시 생산자에게 차액 지급을 의무화는 내용이다. 기준가격은 시장가격을 기초로 생산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가 예산 범위 내에서 확정, 고시토록 해놓았다. 민주당은 주요 농산물에 대해 동시에 가격안정제를 시행하면 공급과잉이나 수급불균형 방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또, 소득의 100%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가격변동 위험을 완충하는 제도이므로 보다 높은 가격과 소득을 얻기 위한 시장의 자율적 수급조절 기능은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농안법 개정안도 농식품부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영농편의성이나 기준가격이 높은 품목의 생산 증가로 인한 가격하락 및 과다한 재정이 소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늘, 양파, 무, 배추, 고추 등 5대 채소의 가격신축성에 대해 생산량이 10% 증가할 경우 가격은 14~56%가 하락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급관리가 전제되지 않은 가격안정제가 시행되면 대상품목으로 생산이 쏠리고, 공급과잉과 가격하락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격 및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는 재정은 WTO(세계무역기구) 감축대상 보조금에 해당되며, 과도한 재정소요 시 온전한 지급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에서 대상품목과 기준가격, 차액지급비율 등을 결정하는 것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한다.
# 농업계 반응
입장표명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단체도 있지만 품목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또는 재검토 목소리가 높다.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사)한국파프리카생산자자조회, (사)한국인삼협회, (사)전국RPC연합회 등 식량, 원예, 과수 등의 생산자조직이 성명을 쏟아내고 있다. 농업과 농업인들을 정쟁의 희생양으로 삼지 말고, 정부와 여야, 전문가들이 충분히 재검토하란 것이 골자다. (사)국산밀산업협회는 4월 29일 “쌀 위주의 지원정책으로 인해 밀은 2% 정도 식량자급률에 불과하다”면서, 개정안 처리에 대해 “막 싹을 틔우고자 하는 국산 밀 농가 전체의 의욕을 꺾는 결과로 연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한국국산콩생산자연합회도 4월 25일 “쌀을 제외한 콩, 밀 등 식량안보에 중요한 다른 품목에 대한 예산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정쟁에 농업의 미래가 볼모가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한국농식품연합회도 4월 29일 “품목 간 형평성 문제와 사회적 갈등 등 제도의 시행으로 발생할 문제점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과 농민단체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농정전문가는 “쌀이 중요한 품목이고, 농가소득이 열악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특정품목에 편중된 재정지원이 경지이용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쌀 소비 감소와 같은 소비추세 및 시장의 변화를 감안해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 중장기적으로 농가소득과 경지이용을 효율화하는 측면에서 법 개정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장표명에 신중한 농민단체는 2023년 양곡법 개정을 추진할 당시 쌀농사를 짓는 회원들과 그렇지 않은 회원들 간의 의견차이로 심각하게 갈등했던 상황이 재현될 것을 우려한다. 또, 관련법의 개정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작용 우려도 있는 만큼 농업·농촌 발전에 어떤 제도가 더 바람직한지 심사숙고 중이라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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