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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농민과 오래 손발 맞춰온 미등록체류 노동자, 추방만이 답?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4-04-21 조회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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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전남 영암군 신북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풀을 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숙련 미등록체류 노동자, ‘정부는 추방하고 농민은 애태우고’

          ‘미등록체류자에 합법화 기회를’…계절근로 여건은 ‘더 보완’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2024. 4. 21



 “이틀 전에도 (미등록체류자) 몇 차 잡아갔다. 제때 마쳐야 할 작업이 태산인데 다 잡아가면 오늘 써야 할 인력을 못 쓰게 되니 인건비만 또 올라간다. 농민들 걱정이 크다. 우린 불법이든 합법이든 계속 같이 일하는 게 가장 좋다. 계절근로자도 좋지만, 미등록자에게도 기회를 줘서 성실하게 일했던 이들이라면 합법화해 줘야 한다.” 김영욱 나주시농어업회의소 사무국장의 제안이다.

지난 15일 전남 영암군 신북면 들녘에서 만난 농민 양민수씨(51, 2만평 규모)도 “계절근로자의 농작업 능력은 불법(미등록) 인력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 농가에선 마지못해 계절근로를 쓰면서 차라리 불법을 쓰는 게 낫다고 한다”라며 “한국말이든 어느 정도 교육이라도 받고 와야 하는데 머릿수만 막 땡기려고(인원만 늘리려고) 주먹구구식으로 파견하니 막상 와도 일을 못한다. 하루 10을 해야 한다면 3밖에 못 하는데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들고, 법 절차도 복잡하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달 베트남인 계절인력 3명을 배정받고 숙소로 시내에 원룸을 하나 얻었다. 고용 비용도 빠듯하지만, 농번기인데 출입국 업무에 2~3일은 걸리니 그도 부담이다.

특히 그는 미등록체류자 단속에 분통을 터뜨렸다. “단속을 안 할 순 없겠지만, 가장 바쁜 때 단속하면 농가들은 다 죽으란 말밖에 안 된다. 정책 자체가 돈 있으면 농사짓고 없으면 못 하는 구조다. 이러면 소농들은 계속 농사 못 짓는다. 계절근로에 대한 여건(숙련도, 숙소 등)도 더 갖추고, 미등록도 자진 출국할 수 있게끔 몇 년간 유예를 주는 등 준비가 필요한데, 지금처럼 일 잘하는 이들은 불시에 다 추방하고, 미숙련 인력만 물밀듯 들여오면 결국 농작물 피해에 인건비까지 배로 들어간다. 법의 잣대가 농업 현장과 맞지 않다.”

농민들은 미등록 체류가 ‘불법인 건 잘 알지만’, 그들 ‘대부분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본국 가정에 생활비를 보내는 성실한 가장들’인 걸 수년 동안 지켜봤기에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고 지적한다. 이에 미등록체류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 것이다. 농민들에겐 ‘불법·합법’을 떠나 농업 노동의 빈자리를 메꿔 준 소중한 존재들이다.

김덕수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사무처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미등록체류 노동자들은 국내에서 떠돌며 몇 년간 일해 온 터라 숙련도가 높은 건 맞다. 농민으로선 숙련도 높은 인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정부에게 단속하지 말라고만 할 수도, 누군가 고발하면 단속을 안 할 수도 없다. 법적으로 합법화는 현실적이진 않고, 법을 바꾸더라도 다른 형태의 불법체류는 또 생겨날 것이다. 지금으로선 정부 도입 외국인력이 농가에 투입되기 전 단 며칠이라도 훈련 기회를 주는 방안을 정부·지자체가 마련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사실 미등록체류는 농업계만이 아닌 사회적 대안이 필요한 문제다. 또 미등록체류 합법화가 비현실적 논의만도 아니다. 한국은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2003년을 전후해 합법화 조치(체류 기간 3년 미만자에 한함)를 단행한 적이 있다. 문제는 그 뒤 20여년 동안 단속·감금·추방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이에 이주민인권운동 진영은 그간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사면과 합법화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 `오랫동안 구제대책이 없었고, 미등록체류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오랜 시간 경제적으로 기여하며 살아온 점''''을 들어 법적 지위를 합법화하라는 것이다.

농업계에서도 다양한 불법체류 관리 정책과 함께 합법화 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 고용환경 변화에 따른 외국인근로자 활용 정책 방안>, 2020). “국내 이민정책의 불완전성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으로 불법체류 상황에 처한 외국인에게 합법화 신청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고용허가제 등에서 불가피하게 불법체류하게 된 경우에 한해 구제 기회 마련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고용허가제 등의 취업이민정책의 불합리성이 해결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국내 이민정책의 문제로 불가피하게 불법체류 상황에 처한 외국인 중, 국내 경제 기여 측면에서 장기 불법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경제적 합법화, 인도적 목적의 합법화(이창원 외(2018))”를 하는 방안이다. 경제적 합법화는 농어업 등 내국인을 구하기 어려운 직종 취업자에 대한 예외적 일회성 합법화로, 해당 산업 종사가 조건이다. 현재 한국 상황에선 불가능한 방안으로만 보일 수 있지만, 농업 현장의 절박함은 고루하고 배타적인 정책과 사회 인식을 뛰어넘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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