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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 근본 해결책은 농산물 수입”… 되살아난 ‘비교우위 망령’
농업인신문 유영선 기자 2024. 4. 19
“불편한 진실이지만, 농산물값 높은 것에 대해 수입을 통한 근본적 해결책을 선택해 봐야 될 것 같다. 애버리지 인플레이션 타깃팅(average inflation targeting 평균물가목표제)이나 통화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농산물값을 빗대, 금융통화정책을 통한 물가대책 한계를 언급했다. 사과값 등 농산물값 상승을 잡는다는게, 재정이나 통화정책 방식을 바꿔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수입정책을 고착화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국가적 선택을 제안했다. 금융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을 책임져야 하는 중앙은행이, 금리조절 시기를 놓쳐 과다한 통화 방출 사태를 야기해 놓고, 즉 물가안정에 실패해 놓고 농산물값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는 모양새다.
더욱 큰 문제는, 금융정책 수장인 한국은행 총재의 이같은 발언은 저율할당관세(TRQ) 수입 정책을 공고히 하고 있는 윤석열정부의 농산물개방 정책에 정당성을 더욱 부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총재 발언의 요지에는 ‘품질 좋고 낮은 가격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나라에서 수입하면 된다’ 는 최악의 농정, 즉 ‘비교우위론’ 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현정부가 이를 개방농정 고착화의 개념으로 삼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농업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률 목표를 현재의 2%보다 낮추는 계획은 없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농산물에 대해 언급했다. 이 총재는“예를 들어 재배면적이 많고 기후가 좋아 가격이 폭락하면 농가에 보조하게 된다. 반대로 값이 오르면 정부가 보조금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려 노력한다” 면서 “불편한 진실이지만 농산물값이 높은 것은 통화 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제는 구조적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 수입을 통해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고 강조했다. 물가안정 실패에 대한 중앙은행의 책임을 기후위기 등으로 인한 농산물값 상승 문제로 돌렸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대책은 수입정책이라고 못 박았다. 비교우위론의 부활을 주장한 것이다.
국제 교역에서 상대적 낮은 비용으로 생산해 팔 수 있는 상품을 수출하고, 열위에 있는 상품은 수입해 쓰면 서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비교우위론은, 농산물 수입국 입장에서는 자체 농산업 붕괴가 초래되는‘최악 카드’로 이미 실증됐다. 이 총재가 물가안정 명목으로 이를 제안한 것이다.
물가대책 책임기관인 중앙은행의 제안은 정부 정책에 직접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최근 ‘돌봄서비스 외국인 노동자 도입’ 과 관련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별 가구가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 즉 사적 계약을 체결해 최저임금제가 적용되지 않는 낮은 비용으로 노동자를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저임금까지 무시한 돌봄노동자 학대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내용임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민생토론회에서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 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 이라며 “그러면 가정내 (사적)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 이라고 말했다.
비교우위 틀을 반영한 이 총재의 농산물 수입 대책 또한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윤석열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중론이다. 결국 통화정책으로도 안되는 농산물값을 잡기 위해서는, 수입·방출로 일관하는게 효과적이라는 이 총재의 비교우위론은 윤석열정부의 ‘개념없는’ 수입정책에 ‘날개’ 를 달아주는 셈이 됐다.
농업부문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사과를 물가폭등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과일 수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에, 중앙은행 총재는 파트너십에 근거한 발언을 한 것” 이라며 “한국은행 이 총재는 자체 통화정책 실패에 대해 국내 농업을 희생양 삼아 책임을 전가하고, 정부의 방향성 잃은 농정에도 논리를 만들어 힘을 실어주는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다” 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제 전문가는 “문제의 본질은 국민 생활비 관리에 대한 중앙은행의 책임회피이고, 여기에 농업이 이용됐다”고 전했다.
이와관련 농업계 반발이 거세다. 당장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논평을 내고 반박에 나섰다. 전농은 12 일“윤석열정권은 마늘 출하기에 1만톤 마늘을 TRQ로 수입했고, 지난해에는 법까지 바꿔가며 양파 TRQ 물량을 늘렸다” 면서 “그 결과는 생산자는 가격폭락을 맞고 소비자 또한 여전히 비싼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하고 있다” 고 논평에 언급했다. 수입정책의 실패를 지적한 것이다.
전농은 “이 상황을 타개할 근본대책은, 스스로 식량·농산물을 생산할 힘을 갖는 것이고, TRQ 수입을 남발하는 것과 같이 당장 눈앞의 숫자만 보는 근시안적인 물가정책은 계속해서 악순환만 만들 뿐” 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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