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기관을 설치해 지방자치단체의 계절근로자 업무 전반을 지원한다는 정부 약속이 1년반째 현실화하지 않고 있다. 계절근로자 도입규모 증대로 지자체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올해도 불법 브로커 개입과 이에 따른 계절근로자 무단 이탈문제가 되풀이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올해 4만5600명의 계절근로자를 농업현장에 배정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현장에서 반길 만한 소식이지만 이에 따라 일선 지자체의 업무 부담이 덩달아 커지는 점은 문제다. 대부분 계절근로자는 우리 지자체가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해외 지자체에서 선발해 들여온다. 이 업무를 지자체별로 공무원 1∼2명이 도맡는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지역별 할당량을 배정하고 외국인의 자격을 확인해 사증을 발급하는 등의 역할만 한다.
브로커 개입 여지도 여기서 생긴다. 해외 인력 선발과 각종 행정처리 절차에 우리 지자체의 전문성이 낮다 보니 현지 사정에 밝은 브로커가 끼어드는 것이다. 이후 브로커가 과도한 알선 수수료를 요구하면서 국내로 온 계절근로자는 돈벌이가 좋은 곳을 찾아 농가를 무단 이탈하는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올초 필리핀 정부가 계절근로자 송출을 중단한 배경에도 브로커가 과도하게 수수료를 수취한 데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문제는 제도 도입 초기부터 지적돼온 것으로 법무부는 2022년 9월 계절근로자 유치·관리 등 업무 전반을 대행하는 전문기관을 지정해 이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년반째 감감무소식이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최근 필리핀 정부로부터 계절근로자 송출 재개를 이끈 경북 영주시가 대표적이다. 필리핀이 계절근로자 송출을 중단하자 영주시는 계절근로자 MOU를 맺은 로살레스시장과 현지 대면 면담을 추진하고, 이후 로살레스시와 공동으로 계절근로자 송출 중단을 철회해달라는 공문을 필리핀 중앙정부에 보냈다. 브로커 없는 모범 고용을 달성하겠다는 결의문도 만들었다. 시 관계자는 “계절근로자 전담팀을 만들고 언어 도우미를 채용하는 등 노력이 성과를 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광역지자체 차원의 지원기관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인 조원지 전북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현지에서 농업과 한국어·한국문화 교육을 지원하는 등 지자체에서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특정 지자체의 ‘개인기’에 따른 것으로, 대부분 지자체가 업무 부담을 호소하는 만큼 정부 차원의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전문기관 지정에 앞서 이르면 6월 지자체의 국내 행정처리 등을 지원하는 ‘계절근로자 통합 관리 시스템’을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각 지자체가 엑셀 등을 통해 계절근로자 농가 배치 현황 등을 작성하는데, 이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기록·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계절근로자 배치 이력 등을 데이터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자체가 계절근로자를 들여오고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부담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일선 지자체의 이같은 호소에 최근 대한민국시도의회운영위원장협의회는 계절근로자 제도개선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칠구 협의회장(경북도의회 운영위원장)은 “계절근로자는 국가간 문제며 고령화된 농촌 인력난 수급에 필수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정부가 제도권에 전담기구를 설치해 계절근로자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