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선 칼럼] 한은총재가 모르는 “불편한 진실”
한국농어민신문 칼럼 2024. 4. 16
가격이 폭락했을 때 정부는 재정보조에 인색했으며, 수확량이 감소해서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는 민생을 핑계로 가격을 억눌러왔던 것이 농민들이 경험해 온 농정이다. 한은총재가 모르는 “불편한 진실”은 그 책임과 손해를 농민들이 감당해 왔다는 사실이다
총선 결과가 나온 다음 날인 지난 금요일(12일)에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한은총재는 우리나라의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이 위원회는 통화정책, 그중에서도 물가동향이나 국내외 경제상황, 금융시장 여건 등을 고려하여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것을 주요 역할로 되어 있다.
간담회 바로 전날에는 국가재정의 적자 규모 87조원, 예산 대비 29조원 증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는 내용을 담은 국가결산이 의결되었다. 따라서 기자간담회에서는 적자 규모가 이렇게 커지면 물가관리가 어렵다는 소신 발언이 나와야 할 텐데, 뜬금없이 농산물가격 때문에 물가관리도 어렵다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주장하면서 그 이유로 “불편한 진실”을 언급했다.
첫째, “농산물 가격문제는 통화재정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라고 했다. 통화재정정책을 통해서 농산물 가격문제를 해결하는 국가는 없다. 통화재정정책은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연결되는 것이지, 사과값처럼 개별 상품의 가격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21세기 산업국가에서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렸다고 해서 사과값만 올라가는 예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화정책의 주요 의사결정권자가 그러면 왜 농산물가격, 수입문제를 언급했을까? 배후에 국민이 모르는 불편한 진실이 있는 듯하다.
둘째, “농산물 재배 면적을 늘릴 경우 기후변화 때문에 날씨가 좋아져서 농산물 생산이 늘어나면 가격이 폭락해 생산자가 어려워져서 다시 재정 보조를 해야 하고”, “반면, 기후가 나빠지면 재배면적이 크더라도 생산량이 줄고 또 보조금을 줘야 한다.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한은총재는 수확량 증가(가격폭락)할 때 농민에게 재정보조를 하고, 수확량 감소(가격폭등)할 때에 농민에게 보조금을 주는 농정이 그동안 제대로 이루어져 온 것처럼 이를 “불편한 진실”로 포장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가격이 폭락했을 때 정부는 재정보조에 인색했으며, 수확량이 감소해서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는 민생을 핑계로 가격을 억눌러왔던 것이 농민들이 경험해 온 농정이다. 한은총재가 모르는 “불편한 진실”은 그 책임과 손해를 농민들이 감당해 왔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농업 농촌의 위기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최근의 사과값과 관련해서도 소비자 구매지원에 재정투입이 이루어졌지, 상당수의 물량이 이미 농민의 손을 떠나 유통업체가 장악하고 있기에 농민의 소득 증가로 연결되는 부분은 미미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피해 금액의 일부를 재해보험으로 받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최근의 정부 정책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대파와 양파, 건고추 등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요 과채류는 TRQ(저율관세할당)로 국내 시장을 이미 잠식하고 있다.
셋째, “기후변화로 농산물 생산량이 줄어들면 유통구조 개선으로는 한계가 있다”라면서, “농산물 수입을 통해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하면서 농산물 수입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사과값이 비싸다고 해서 위생 검역절차를 무시하고 수입하게 되면, 한번 무너진 위생 검역절차를 다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은 한국에만 국한해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고, 전 지구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수입의존이라는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 수가 없다. 수입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한은총재가 모르는 “불편한 진실”이다.
한은총재의 주장은 1970년대 말에 정부가 농산물 수입자유화정책을 추진할 때의 논리가 그대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휩쓸기 시작한 시절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고, 국제농산물시장에서 거대 다국적기업의 지배력도 지금보다 훨씬 미약했다. 그러나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가 빈발하고, 경제의 금융화로 먹거리에 대한 투기자본의 발호가 드세지면서 안정적인 국내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농산물 자유무역은 매우 위험한 선택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농식품부에서 ‘식량주권 강화’를 농정지표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신냉전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지정학적인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생산을 통한 안전망 구축을 소홀하면 모두가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번 총선에서 여야 모두 농업과 먹거리에 대한 공약이 발표하였고,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에서는 농산물 가격안정제 도입과 기후위기에 따른 농업재해 보장 강화 등을 약속했다. 기후위기시대에 이들 정책이 시장의 불안을 완화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세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본연의 중요한 책무는 환율 안정이다. 치솟는 환율을 감당할 수입물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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