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수입 사과의 검역을 한시적으로 완화하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행 ‘식물방역법’과 국제 협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더해 검역 문턱을 낮추면 외국의 유해 병해충이 유입돼 먹거리 안보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
GS&J 인스티튜트는 최근 ‘농산물 수입 검역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보고서에서 “사과 수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검역 원칙에 맞게 수입위험분석(IRA)을 완료한 후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사과가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며 일부 언론은 ‘한시적 사과 수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시적으로 수입 검역 문턱을 낮춰 사과 물량을 확보하자는 주장이다.
외국산 사과가 국내에 들어오려면 총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특히 사과 같은 생과실을 수입할 때는 병해충 위험을 평가하고 그 관리 방안을 수출국과 협의하는 3∼5단계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검역 절차가 부실하게 이뤄져 병해충이 유입되면 생산량 감소, 방제 비용 증가 등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수입금지식물에 대한 우리나라의 위험분석은 평균 8.1년, 우리나라가 수출할 때 상대국의 위험분석 기간은 평균 7.8년이 걸렸다. 일례로 감귤은 감귤궤양병 등의 사유로 뉴질랜드에 수출하기까지 23년이 소요됐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일시적 사과 수입은 현행 ‘식물방역법’에 위배된다. ‘식물방역법’ 제6·10조는 외국으로부터 병해충 유입 우려가 있는 물품의 평가를 의무화하고, 국내 식물에 피해를 줄 우려가 없는 경우만 수입을 허용한다. 병해충 위험 분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입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
사과 수입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문턱을 높이자는 주장도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배치된다. WTO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에 관한 협정 제2조 3항은 동일 또는 유사한 조건에 있는 국가를 자의적, 부당하게 차별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입 허용이 비록 일시적이라 해도 이는 해당 외국산 사과가 국내 식물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인정한 셈인 탓에 이후 수입을 막는 것은 자의적인 검역 조치로 해석될 수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유사한 조건에 있는 국가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위험분석 도중에 특정 국가의 사과 수입을 허용하면 그와 유사한 단계에 있는 모든 국가의 사과 수입을 허용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과 재배농가와 주요 농민단체들은 성급한 사과 수입이 자칫 먹거리 안보에 치명상을 남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느슨한 검역으로 국내에 없는 병해충이 유입될 경우 생산량 감소 등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생태계 혼란으로 농업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 원장은 “수입 허용의 결정은 검역의 본래 취지에 맞게 국내 식물에 경제적 피해를 줄 우려가 없다는 판단에 기초해 이뤄져야 한다”며 “자체 원칙과 절차에 따른 충실한 이행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7월 조생종 사과가 시장에 출하돼 가격이 안정되기까지 국산 참외·딸기·토마토 등 대체 과일 공급을 확대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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