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6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의 한 양파밭에서 나용근씨가 궂은 날씨 탓에 수확을 마무리하지 못한 양파를 보며 한숨짓고 있다. 나씨는 “비가 잦고 춥지 않았던 겨울날씨로 인해 비상품이 많이 발생했다. 줄기가 붙어있는 건 모두 비상품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자체 폐기에 나서는 농민들의 노력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승호 기자
물가 일변도 농정 속 사라진 농민 ‘편’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2024. 4. 1
전 국민의 관심이 농업에 쏠린 듯한 요즘이다. ‘물가’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지속 중인 농산물 수입·할인 정책과 대통령의 비현실적인 발언,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이를 무기 삼아 끈질긴 공격을 퍼붓는 정치권을 비롯해 이 모든 형국을 끊임없이 중개하는 언론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혈안이다. 하지만 정작 관심 밖으로 내팽개쳐진 농업계에선 농민들 스스로 농업을 살리기 위한 활동들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근시안적 물가 편중 농정을 규탄하며 국가 책임 농정으로의 전환을 촉구 중인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들의 숱한 성명과 집회는 물론, 농산물 안정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현장 농민들의 다양한 활동은 주목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875원의 대파값’보다 중요도가 떨어져서인지 좀처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수확 중인 제주산 조생양파는 지난겨울 내내 지속된 이상 고온과 잦은 강우 등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아 무름병 등의 병해 발생과 생육 불량 등의 피해가 수확과 동시에 속속 확인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제주에선 평년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달 18일 조생양파 수확이 시작됐다. 수확 시기를 열흘 남짓이라도 늦춘다면 생산량 감소 폭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농가가 조기 출하에 매진 중인 것이다. 말 그대로 한 해 농사가 달려 있지만 농가가 생산량 감소를 감내하면서까지 수확 시기를 앞당긴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때문이다.
사과를 비롯해 대파 한 단의 가격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상황 속에서 농식품부는 저장양파 재고량과 2024년산 양파의 생육 저하 및 생산량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을 우려해 조생양파 조기 출하 장려금 지급을 결정했다. 가격 폭락을 겪던 제주 월동무 농가가 자체 폐기를 진행함에도 대책 마련에 느긋하던 모습과 상반된다. 조생양파 출하 장려금은 1kg당 200원으로, 먼저 지난달 15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간 전국 공영도매시장을 대상으로 먼저 지급됐고 이후엔 26일까지 가락시장 대상으로 그 적용을 제한해 재차 시행됐다. 증가한 생산단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확·출하가 시작된 가락시장 경매단가를 종합해 봐도 농가 참여를 독려하기엔 다소 부족한, 농가 입장에선 한마디로 마뜩잖은 수준의 출하 장려금이다. 하지만 농가는 정부가 또다시 수확기 저율관세할당(TRQ)물량 양파 수입을 강행할까 우려되는 마음에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정부 정책에 부응하며 조기 출하 노력을 지속 중인 셈이다.
농가의 자구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상기후의 여파로 올해 비상품(쌍구) 발생률이 평년 5~10%에서 30% 수준으로 치솟았지만, 자체적으로 비상품 양파의 시장 출하를 제한하고 있다. 실제로 조생양파 주산지인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원에선 ‘양파 비상품 출하금지’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달 26일 흐리고 찬 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는 수확 작업이 한창 진행됐다. 비닐을 걷고 양파를 뽑아내고 줄기를 쳐낸 뒤 건조·선별해 망 작업까지 마친 곳곳의 포전에는 남아 있는 비상품 양파가 수두룩했다. 얼핏 보면 수확한 양파를 아직 담아내지 않은 포전으로 보일 정도였다. 한 농민은 남은 비상품 양파를 밭째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한숨지었다.
이날 만난 농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상기후가 빚어낸 재해의 심각성과 대책 마련 필요성,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앞장섰다.
“가격 오르는 게 이젠 아주 무서울 지경이다. 또 수입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농민 입장에선 농산물 가격 잘 받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데, 가격 오르면 뉴스 나올 게 뻔하고 그럼 수입할까 다들 그 걱정뿐이다. 암만 봐도 농민 편은 없는 것 같다.”
사라진 농민 편을 찾는 농민들을 대신해 이번 주 <한국농정>에선 정부의 물가대책을 톺아보는 한편 ‘급등’한 물가 상황을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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