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1년 12월 인도 콜카타의 한 도매시장에서 한 노동자가 양파 자루를 나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또 양파값에 정권 바뀔라…모디 총리, 양파수출 금지
작년 대만 총통선거선 중국이 파인애플석가값 개입
한겨레 홍석재 기자 2024. 3. 26
다음달부터 총선(4월19일~6월1일)이 시작되는 인도에서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인민당(BJP) 정부가 양파값을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아예 양파 수출 금지 조처를 무기한 연장해 표심 잡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인도 정부는 양파값이 상승하자 지난해 12월3일에 2024년 3월31일까지 수출 금지 조처를 내렸는데, 선거를 앞두고 무기한 연장했다.
인도 정부 양파값 단속은 채소나 과일 가격이 선거판을 흔드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8일 농협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 한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같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인도에서는 양파가 선거판을 흔들 수 있는 대표적 뇌관으로 꼽힌다.
인도 뭄바이에 있는 무역회사의 간부는 “최근 새 수확기를 맞아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데 양파 수출 무기한 연장 조처는 놀랍고 완전히 불필요하다”고 불만을 토했다고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최근 전했다. 이 간부는 인도 양파 최대 생산지인 마하라슈트라 도매시장에서 양파 가격이 12월 100㎏당 4500루피(7만2000원) 정도에서 최근 1200루피(2만원)가량으로 떨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모디 정부가 이렇게 양파 가격에 민감한 이유는 양파값 문제가 지니는 파괴력 때문이다. 인도에서 양파는 요리에 빠지지 않은 재료이며, 연간 양파 생산량과 1인당 연간 양파 소비량이 모두 세계 2위다. 한해 양파 소비량이 1500만톤에 이른다. 국민 70%가 농업에 종사하는데 양파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생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인도 양파값의 파괴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1980년 ‘양파 총선’이다. 당시 야당인 인도국민회의를 이끌던 인디라 간디는 양파값 상승을 잡지 못한 집권 여당을 비난하는 신문 광고를 대대적으로 게재해 ‘양파 문제’로 승부수를 던졌고, 결국 현재 인도인민당의 전신 격인 인민당에서 정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1998년 델리주 선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집권당이던 인도인민당은 포크란 사막에서 핵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해 양파 작황이 엉망이 되면서 양파값이 급등했다.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성 물질 탓에 흉작이 됐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정부 책임론이 일면서 결국 선거에서 패했다. 2014년부터 10년째 집권 중인 모디 정부도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선 양파값은 매우 민감하게 관리해야 할 문제다.
지난해에서는 대만에서도 과일이 선거판을 흔들었다. 대만 총통 선거를 한달여 앞둔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대만산 열대 과일 ‘파인애플석가’를 2년여 만에 재수입하기로 결정해, 중국의 대만 선거 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중국은 양안 간 긴장이 고조되자 2021년부터 이 과일 수입을 금지했는데, 총통 선거를 앞두고 돌연 수입 재개로 입장을 선회해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야당인 국민당에 유리하게 표심을 돌리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이 이런 조처로 대만인들의 표심을 돌리지는 못했고,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집권 여당인 민진당 라이칭더 부총통이 당선됐다.
농산물 가격은 소비자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농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나라라 할지라도 선거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농민 유권자의 표심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인도 이코노믹타임스는 “전세계 선거의 해인 올해 농민 유권자의 ‘반란’이 인도뿐 아니라 세계 선거 판도를 뒤엎을 수 있다”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