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농업분야 대응이 중요해졌지만 정부 정책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후적응형 품종 보급이 지지부진한 데다 극한 홍수·가뭄 등에 대응할 사업도 첨단기술 적용과 거리가 먼 하드웨어 관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물가대책에 치중한 농산물 수급 대응도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른다.
현재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전략으로 추진하는 생산기반 확충 정책은 홍수·가뭄을 대비한 이·치수 능력 확대에 집중돼 있다. 수리·배수 시설 정비, 농업용수 개발 등 하드웨어 중심의 과거 전략을 답습하는 모양새다.
일조량 부족과 한파·폭염으로 시설 냉·난방비 부담 가중, 잡초·돌발해충 등 다양한 위험 요인이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데도 대비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ICT)·빅데이터를 활용해 이상기후 대응을 꾀하는 ‘농업 기반과 재해대응 기술개발’ 사업은 올해 종료된다. 최우정 전남대학교 지역·바이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농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식량 생산”이라면서 “현재 농업 환경을 고려한 기후위기 적응형 농업 생산시스템을 연구·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난화에 따른 기후적응형 품종 보급도 중요한 과제로 꼽히지만 속도가 더디다. 2022년 기준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신품종 2552개 가운데 기후위기 적응형은 318개로, 전체의 12.4%에 불과하다. 신품종이 현장에 보급되는 데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리는 현실이지만 이를 단축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소극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농민들의 관리 능력을 높이는 일도 필요한 과제로 꼽힌다. 태풍이든 폭염이든 재난 상황에 일차적으로 대응하는 당사자가 현장의 농민이기 때문이다. 임영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위기 예·경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거나 그에 맞는 영농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 등이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금사과’ 등 고물가 논란을 부른 근본 원인이 이상기후에 있는 만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농축산연합회는 22일 성명에서 정부의 물가대책이 농축산물 할인과 수입 확대로 일관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최근 농산물 가격 상승의 원인은 이상기후로 작황이 부진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농축산물 수급 불안정과 농민 피해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농산물 가격 폭등을 기후위기에 따른 농업 재해로 취급하고 정부와 국회가 농작물재해보험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실련은 농작물재해보험 개선 방향으로 ▲대상 품목 확대 ▲가입 기준 완화 ▲보상 수준 상향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