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가 대형 유통업체의 사과 계약물량을 풀지 않고 묶어둬서 가격이 올랐다는 건 사과 유통구조를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른바 ‘금(金)사과’ 논란의 불똥이 APC로까지 튀었다. 최근 한 매체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사재기해간 사과가 APC에 묶인 채 풀리지 않아 사과값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사과 주산지가 아닌 지역의 거점 APC 등에 대형 유통업체의 계약물량이 저장돼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APC들은 즉각 반발했다. 우선 대형 유통업체가 APC 물량을 사재기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성준 대구경북능금농협 영주농산물유통센터장은 “대형 유통업체와 1년 단위로 거래 계약을 하는데, 전년·평년 출하물량 등을 고려해 연중 공급 계획을 세우는 정도이지 계약물량 자체를 정하진 않는다”며 “사과가 언제 얼마나 팔릴지 알 수 없는 만큼 대형 유통업체는 매일매일 상황에 따라 발주를 넣고 APC는 그에 맞춰 납품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박연순 전국과실전문APC운영협의회 사무국장은 “지금이야 사과값이 높다고 하지만 봄부터 제철과일이 나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며 “대형 유통업체는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사재기를 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사례를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APC에 저장된 사재기 물량이 없다고 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대형 유통업체나 중도매인 등의 물량을 따로 보관 중인 APC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사재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APC들은 연중 공급을 위해 저장 중인 물량을 일부러 출하하지 않고 묶어둔 것으로 치부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상복 충북원예농협 거점APC 소장은 “APC는 10월 수확기부터 사과를 매입해 저장하고, 이듬해 조생종이 나오는 7∼8월까지 분산출하를 통해 사과를 꾸준히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며 “안 그래도 지난해 생산량 감소로 저장 물량이 크게 줄어 고심인데, 매년 유지하는 장기 저장물량을 사재기 계약물량으로 보는 건 말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전국과실전문APC운영협의회와 한국과수농협연합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올해 APC들은 사과농가에 지속적으로 출하를 독려했지만 지난해 작황부진으로 평균적으로 2022년 매입량의 절반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APC는 수급과 물가 안정을 위해 유통업체와 협의해 사과 출하가격을 정하고 안정적으로 일정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PC는 사과의 감모율 때문에라도 출하를 의도적으로 지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관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분이 빠지고 과피가 수축되는 등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부 APC는 저온시설 수용 능력이 크지 않아 출하를 통해 저장물량을 빼낸 후 다시 농가에게 매입해 저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격을 잡기 위해 APC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언론의 주장대로 지금 물량이 몰릴 경우 추후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 소장은 “최근 정부가 납품단가 지원, 할인 판매 등에 대대적으로 나서면서 되레 소비가 늘어 대형 유통업체 발주량도 증가한 추세”라며 “적은 물량을 단기간에 모두 소진하면 나중엔 사과가 진짜 남아나지 않아 또 수입해야 한다는 주장만 득세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협 등 생산자단체의 출하계획을 점검해 분산출하를 유도하고 있으며, APC의 저장물량을 통해 7월까지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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