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60% “지난해 수입 감소”
재해피해 지원 강화 등은 더뎌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 2024. 3. 6
최근 경북 상주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두고 농가경영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렸다는 진단이 나온다. 빈발하는 재해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2일 상주에서 40대 영농조합법인 대표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고인은 약 20년 전 복숭아농사를 짓기 시작해 최근에는 지역의 포도·사과 등을 유통하는 일을 주로 했다. 고인은 지난해 재해로 납품 물량과 품질을 맞추는 데 애를 먹었고 경영난과 부채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상주는 지난해초 이상저온 현상에 이어 초여름 집중호우와 이에 따른 탄저병 피해까지 직격으로 맞았다.
농업계는 이번 사건 이면에 경영 안전망 부재로 재해 등에 취약한 농가의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농어민당은 논평을 통해 “고인의 죽음은 농업재해에 우리 농민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표이자 정부 정책에 따라 규모를 늘린 청년농의 경영 부담이 얼마나 큰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실제 재해에 따른 농가경영 위기와 부채 압박은 대다수 농가가 직면한 보편적 문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2월 농가 9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가 지난해 농업수입이 2022년 대비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수입 감소의 주원인으로는 ‘기상이변’이 꼽혔다.
농가부채는 통계청이 5년 단위로 조사하는데 2018∼2022년 농가당 평균 부채는 3564만원으로 이전 세차례 조사(2003~2017년, 5년 주기) 대비 28.4∼34.4% 늘어났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도 정부 대책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약한 농가경영 안전망문제는 2021년산 쌀값 폭락 사태를 계기로 농업계를 비롯한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양곡관리법’ 개정을 통한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주장했던 야당 대안에 반대하며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수입(收入)보장보험 확대’였다. 하지만 여전히 콩·포도·양파·마늘·고구마·가을감자·양배추 등 우리농산물 생산액의 16.5%(2022년 기준)에 해당하는 7개 품목에 대해, 그마저 주산지에서만 시범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2021∼2023년 최근 3년간 사업 예산이 25억원으로 고정되면서 가입 대상 면적 대비 실가입률이 3%대에 그쳤다. 정부가 올해 예산을 81억원으로 늘리고 품목도 확대한다고 밝혔지만, 사업이 농가경영 안정의 실효적 대안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재해 대책도 마찬가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한시적으로 추진했던 ‘농축산분야 피해 지원 기준 상향·확대 방안’을 상반기 안에 제도화한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농업재해 대책을 개선할 적기였던 지난여름, 농식품부가 재정 확보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약속을 미심쩍게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대안으로 프랑스 사례에서 보듯 농산물 가격을 일정 수준 보장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는 이번 사건 직후 입장문을 통해 “농민 5분의 1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프랑스에선 농민들이 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결과 ‘농산물 가격 하한선 설정’ 등 약속을 받아냈다”면서 “우리도 정부·여당이 민주당의 농산물 가격안정제 도입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르피가로’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말 한 농업 박람회에서 농가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농산물 가격 하한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당장 도입은 어렵더라도 대통령이 먼저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인정받고 있다.
박웅두 한국농어민당 공동대표는 “농가가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데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면서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와 ‘필수농자재 반값 공급’ 등 다양한 소득 안전망과 생산비 절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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