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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사유지라고 길 막고, 남의 땅에 길 내고…농촌 ‘길 위의 전쟁’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4-03-06 조회 1594
첨부파일 20240304500631.jpg
* 전남 영광군 염산면의 한 마을주민이 통행로를 가로막은 건축자재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땅주인, 주민·차량 통행 못하게 

            대기업, 개인 땅 무단점유 사용 

            ‘비법정도로’ 놓고 곳곳서 갈등 

            지자체 중재할 법적 근거 필요 

            인제군, 사유지 매입 추진 눈길


                                                                               농민신문  영광=이시내, 이문수 기자 2024. 3. 5


 농촌 곳곳에서 ‘길 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주민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통행로를 사유지라는 이유로 땅 주인이 갑자기 막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주민들은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소방차가 진입하지도 못해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반대로 대기업이 사유지에 무단으로 길을 터 땅 주인과 갈등을 빚는 일도 발생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통행로를 땅 주인에게서 사들이는 방식으로 주민 불편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주목받는다.

 

◆길 막은 땅 주인, 택배차는 물론 소방차도 못 들어가=“차량이 다니는 통로 한가운데에 건축자재를 쌓아두면 어떡하라는 말입니까? 마을에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차는 어떻게 들어오라고요?”

전남 영광군 염산면의 한 마을에서 차량 통행로를 둘러싸고 주민과 토지 소유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토지 소유주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사유지 99㎡(30평)에 가족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다툼이 통행로가 막히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해당 통행로는 평소 택배 차량 등이 마을을 오가며 이용하던 도로였지만, 두달 전부터는 묘지 조성에 사용할 건축자재가 도로폭의 절반가량을 막아섰다. 자전거 한대만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아진 것이다. 다른 통행로가 있기는 하지만, 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데다 경사가 있어 대형 차량이 지나다닐 수 없다.

주민들은 불편함을 넘어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불안에 떤다. 마을주민 한영술씨는 “대형 차량이 오갈 수 있는 통로가 완전히 막혔다”며 “화재·응급 환자가 발생하는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토지 소유주도 할 말이 많다. 소유주 A씨는 “애초에 아무런 고지도 없이 사유지에 농로를 설치한 게 이해가 되느냐”며 “지난해 가족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동네주민이 지목에 맞지 않는 토지 이용이라며 구청에 민원을 넣는 바람에 오히려 공사에 차질을 빚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군 관계자는 “농로 일부가 사유지에 포함돼 있어 법적으로 개입할 근거가 마땅찮다”며 “토지주를 상대로 농로 위에 쌓인 적치물을 치울 것을 설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남의 땅에 진입로 내고 나 몰라라 하는 대기업=사유지에 길을 내고 사용료도 내지 않으면서 나 몰라라 하는 대기업도 있다. 도모씨(45)는 2019년 7월 강원 홍천군 서면 대곡리에 있는 땅을 경매로 산 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전체 면적 가운데 3970㎡(1200평)가량이 인근 대형 콘도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도씨는 “군청에서는 도로가 생기게 된 이력이 있는 자료를 소실했다는 이유로 뒷짐을 지고 있고, 사실상 불법으로 사유지를 점유한 해당 업체에서는 보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분통이 터진다”고 하소연했다.

통행로를 오랫동안 사용해온 대명소노그룹 언론홍보팀 관계자는 “토지주가 경매를 통해 땅을 사 취득원가가 낮은 데도 지나치게 많은 보상을 원하고 있다”며 “군의 토지 보상안이 나오면 내용을 따져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홍천군청 건설과 관계자는 “땅 소유주와 대명소노그룹 간 견해차가 커 중재가 쉽지 않다”며 “조만간 감정평가사 2곳에 자문해 토지 가치를 제대로 매긴 후 다시 중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비법정도로 갈등 지자체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비법정도로로 구분되는 통행로를 두고 토지 소유자와 지역주민 간 갈등은 갈수록 격화하는 양상이다. 국토연구원은 지자체별로 전체 도로(국공유지와 사유지 포함) 가운데 많게는 20% 정도가 비법정도로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전문가들은 비법정도로 탓에 발생한 갈등이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되는 만큼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과 지역주민의 통행권을 최대한 침범하지 않는 절충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법정도로는 ‘도로법’상 계획·건설·관리를 하지 않았지만, 관습적으론 도로로 이용하는 통행로를 뜻한다.

김승훈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통행권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도로를 이용할 권리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그 가치가 크다”며 “지자체가 예산을 확보해 비법정도로를 매입하거나, 대체 도로를 신설할 수 있겠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아 이같은 보상이 어려운 지자체에는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근본적으론 지자체별로 비법정도로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행정당국이 상황에 개입해 갈등을 중재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비법정도로 갈등을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매입 보상에 나선 강원 인제군의 사례가 주목받는다. 군은 최근 2031년까지 145억원을 들여 지역 비법정도로로 쓰이는 사유지 7409필지 전부를 매입한다고 밝혔다. 2월말 기준 495명의 땅 750필지, 12만2753㎡(3만7000평)를 군이 사들였다.

군 지적관리 담당자는 “감정평가 후 적정 가격으로 비법정도로를 매입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토지 소유주의 신청이 쇄도한다”면서 “비법정도로 매입이 주민간 갈등을 줄이고, 공공시설을 효율적으로 유지·관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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