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포천=오영채, 당진=서륜, 대구=김다정, 고성·횡성=이현진 기자 2024. 2. 4
“남 일로만 여겼던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 농장에까지 적용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네.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저 막막하기만 하네.”
1일 경기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토말농장에서 유재근씨(67)가 인근 다른 농민에게 새로 생긴 근심거리를 토로하고 있었다.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유재근씨는 시설하우스 120동에서 얼갈이배추와 시금치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와 같이 일하는 상시 외국인 근로자는 8명. 농번기가 되면 외국인 근로자는 13∼15명으로 늘어난다.
그는 “인명을 중시하는 법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농촌의 중규모 농장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유씨 농장 옆에서 그린농장을 운영하는 유인영씨(62)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농촌 현실상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고용할 수밖에 없는데 의사소통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안전사고 인식이 내국인 근로자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해 관련 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유인영씨는 “농장주들의 고령화로 작업할 때 트랙터 운전 등은 젊은 외국인 근로자가 대부분 한다”며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은 국내 근로자들보다 안전의식이 낮아 농작업 시 항상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근로자 15명을 고용하고 있는 양돈농가 박영진씨(60·충남 당진시 합덕읍)도 “외국인 근로자는 스키드로더·트랙터 등에 관심이 큰 데다 편하게 작업하기 위해 농기계를 많이 활용한다”면서 “전문 교육을 받지 않았을뿐더러 안전수칙에도 익숙지 않아 위험한 경우가 종종 발생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소규모 식품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업체들도 근심이 크다. 취지엔 공감하지만 법이 너무 포괄적이고 사업자가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고까지도 업주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고 느껴져서다. 무엇보다 이 법안과 관련해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김현수 하림DG포스터 대표(대구 북구)는 “법이 확대 적용된다는 걸 뉴스나 주변인을 통해 들었을 뿐 자세한 법 내용을 설명해주는 문서 한장 받은 바 없다”면서 “사업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 법을 만들면서 이런 내용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유재근씨는 “얼마 전 인근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가 숙소에서 숨졌는데 평소 질환이 있는 근로자였다는 소문이 있다”며 “이런 문제가 우리 농장에서 발생하면 꼼짝없이 처벌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비용 상승도 우려된다. 김 대표는 “법이 확대 적용될 것이란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지게차에 짐을 많이 실을 땐 공장 내에서 이동하더라도 반드시 랩핑을 하도록 지시하는 등 나름대로는 안전관리에 힘쓰고 있다”면서도 “결국 비용이 늘 수밖에 없어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박승호 강원 횡성어사품조합공동법인 대표도 “아무래도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예전엔 1명이 하던 것을 2명이 작업하고 있고, 사다리 같은 장비도 더 튼튼한 것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비용 부담이 크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미곡종합처리장(RPC)들이 최근 2년 동안 대부분 적자를 보고 있는데 이런 안전관리 비용까지 늘면 앞으로 적극적인 사업 운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관련 법안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나 홍보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규제 완화 요구도 나온다.
윤중산 강원 고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법이 적용되고 되지 않고를 떠나서 직원들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주의해야 할 안전관리 의무 등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김창길 포천 가산농협 조합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보다는 사고 예방 중심으로 시행됐으면 한다”며 “이를 통해 이 법이 농촌 현장에 무사히 연착륙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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