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유신 제주 서귀포 성산일출봉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부센터장(왼쪽)과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이 성산읍 고성리에 있는 한 겨울무밭에서 생육 상태를 살피고 있다.
무시세 작년보다 30% 넘게 ↓
양배추, 당근 등도 사정 엇비슷
기후변화 영향 타지 재배 늘고
경영비 상승으로 경쟁력 약화
“도 농정당국 행정지원 나서야”
농민신문 심재웅 기자 2023. 11. 30
“생산량은 늘었는데 가격은 오를 줄 모르고, 뾰족한 해결책도 보이질 않으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서 겨울무를 재배하는 양만길씨(63)는 수확하지 못한 밭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해 농사 결실을 본다는 기대에 부풀어야 마땅하지만, 소비 침체와 생산량 증가로 시세가 좋지 않은 데다 앞으로 가격 반등 여지조차 없어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11월29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20㎏들이 무 상품 한상자는 8384원에 거래됐다. 지난해(1만2360원)보다 32.2%, 평년(1만725원)보다 21.8% 낮은 값이다.
겨울무는 충남·전남 지역 가을무 출하가 끝난 후 시장에 나와 초반에 가격이 호조세를 보인다. 하지만 올해는 가을무와 출하 시기가 겹치게 됐다. 오유신 성산일출봉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부센터장은 “시세도 낮은데 물량까지 늘면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어 농민들이 어쩔 수 없이 수확 일정을 미루고 있다”며 “무가 너무 커버리면 상품 가치가 없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강동만 제주월동무연합회장은 “물류비·자재비·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무 20㎏들이 한상자 도매가격이 1만2000원선은 돼야 본전”이라며 “지금은 출하해봤자 손해”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겨울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따뜻한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채소 주산지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다른 지역에서 겨울채소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도내 생산량도 늘면서 무뿐 아니라 주요 겨울채소인 양배추와 당근도 전망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제주도는 품목별 재배 의향 조사에서 올해산 겨울채소 재배면적이 1만2953㏊로 지난해 1만2603㏊보다 약 2.8%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겨울무와 양배추 재배면적은 각각 5424㏊와 1565㏊로 지난해(겨울무 5464㏊·양배추 1549㏊)와 비슷하지만, 작황 호조로 생산량은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은 “올해는 태풍 피해가 거의 없고 날씨도 좋은 편이라 지난해보다 무 생산량이 약 2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제주양배추연합회도 최근 개최한 총회에서 양배추 단수(10a당 생산량)가 지난해 대비 최대 1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양배추는 겨울과 맞물린 늦가을과 초봄에 무안 등 전남지역에서 생산되는 양이 최근 몇년 사이 급격하게 늘어 제주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2020년에는 재배면적이 2304㏊로 제주(2231㏊)를 앞지르기도 했다. 겨울철 양배추가 다양한 지역에서 대량 생산됨에 따라 해상 물류비 등 생산 원가가 추가로 드는 제주산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버거운 형국이다.
양배추 재배농민 고성관씨(56·제주시 애월읍 봉성리)는 “올해 유통인들이 전남에서 충분한 물량을 구해 제주에 내려오질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그나마 거래를 타진하는 상인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해 농가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귀띔했다.
유통인들은 전문 수확단을 꾸려 시기별로 전국을 순회하는데, 만일 이들이 제주에 들어오지 않으면 인력 부족으로 수확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병수 애월농협 조합장은 “양배추는 수확 현장에서 선별 후 망에 담아야 해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며 “농가들이 제때 일손을 구하지 못하면 수확을 포기하는 일이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근은 올해 예상 생산량이 5만4016t으로 평년의 4만5246t보다 19.4%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에 피해를 봐 생산량이 급락한 지난해(2만9241t)와 비교하면 무려 84.7% 많은 수준이다.
구좌읍 월정리에서 5950㎡(1800평) 규모로 당근을 재배하는 김명화씨(74)는 “올해 생산량이 급증해 걱정이 많다”며 “인건비는 치솟고 소비는 침체해 갈수록 농사짓기가 버겁다”고 하소연했다.
김은섭 제주당근연합회장은 “올해 작황이 좋아 출하량이 증가하는 12월 초·중순부터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농가와 생산자단체는 출하 시기를 조절하고 판매를 확대하며 가격을 반등시킬 계기를 만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구좌농협(조합장 윤민)과 제주당근연합회는 비상품 당근을 농가가 자율적으로 폐기하도록 강력히 독려하기로 했다. 예상 물량은 약 5000t이다. 아울러 구좌농협을 비롯한 주산지 농협이 12월까지 당근 1만t을 선제적으로 사들임으로써 홍수출하를 방지할 계획이다.
윤민 조합장은 “매취·가공 사업 확대로 가격 안정에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는 평년보다 일찍 수출길에 올랐다. 성산일출봉농협(조합장 강석보)은 매년 11월 중순경부터 약 1000t을 미국·일본 등지로 수출하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시기를 보름가량 앞당기고 물량도 늘려 1500t 이상 수출할 계획이다.
제주양배추연합회는 양배추를 조기 출하하거나 가락시장이 아닌 도매시장에 나눠 출하하는 농가에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수급안정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같은 생산자들의 노력과 더불어 행정의 적극적인 도움이 뒷받침돼야 겨울채소 대란을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도 도 농정당국은 생산자 중심 수급안정책 실천이 먼저라며 당장은 뒷짐을 풀지 않고 있다.
양행석 도 원예진흥팀장은 “생산자단체와 주산지 농협을 중심으로 분산출하와 같은 자체 수급조절 방안을 수립하고 있으며, 행정은 이에 필요한 지원에 나설 것”이라면서 “시장격리와 같은 인위적 수급조절은 지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