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 평창군 진부면 일대의 무밭. 일부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한 가운데 무가 영하의 날씨에 상품성을 잃고 푸석푸석 말라가고 있다.
강원 평창 무밭 가보니
11월 평균가, 지난해 25% 수준 출하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
“과잉생산, 비축량 방출이 원인 수급불안 해소책 조속히 내야”
농민신문 평창=김윤호 기자 2023. 11. 23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며 뼈 빠지게 길렀는데 이제 와서 내 손으로 갈아엎자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20일 찾은 고랭지무 주산지인 강원 평창군 진부면 일대. 예년 같으면 이달초까지 수확을 모두 끝마쳤어야 할 무밭엔 최근 찾아온 영하의 날씨에 상품성을 잃고 푸석푸석 말라가는 무들이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군데군데 트랙터로 갈아엎은 무밭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수항리에서 3305㎡(1000평) 규모로 무농사를 짓는 변인호씨(54)는 “땀 흘려 생산해 시장에 내봤자 작업비·운송비·상자값 등을 빼고 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며 “속상하지만 출하를 포기하고 무를 그대로 밭에 버려두거나 폐기작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떨궜다.
인근 마평리에서 무농사를 짓는 김모씨도 “못 받아도 20㎏들이 한상자에 1만5000원은 받아야 외국인 근로자들 인건비도 주고 외상 달아둔 농자재값도 갚는데 답답하기만 하다”며 “내년 농사를 위해 무를 치우는 데도 많은 인건비가 들어가 결국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이달 거래된 고랭지무는 20㎏들이 상품 한상자가 평균 5000원대로 지난해(2만원대) 가격과 견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수확할 때 발생하는 작업비와 유통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고려하면 출하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것이다. 결국 산지폐기에 나서는 농가가 생기고, 여기에 들어간 인건비와 그동안 투입된 영농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됐다.
밭에 나뒹구는 무만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는 김씨는 “이런데도 앞으로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 회의감이 든다”며 고개를 저었다.
방림면 계촌리에서 무농사를 짓는 임동식씨(65)도 “가을 내내 애써 무를 길렀지만 값이 너무 안 나와 출하를 포기했다”며 “아는 김치공장에 연락해 ‘와서 공짜로 무를 뽑아가도 좋다’고 했지만 ‘비싼 인건비 때문에 수지가 안 맞는다’며 거절당하는 씁쓸한 상황마저 벌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를 탓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 무농가는 “과잉생산과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부진도 있지만, 정부가 김장재료 수급안정을 위해 비축물량을 방출한 것이 지금 같은 가격폭락을 불러온 측면도 있다”며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주지 않으면 이곳 농민들이 받는 타격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군 관계자는 “올해 고랭지무 파종량이 많기도 했지만 봄 저장무가 도매시장에 출하되며 무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군에서도 산지폐기 면적 조사에 나선 만큼 관계기관과 잘 협의해 가격 안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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