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중국산 신선 양배추. 사진=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제공
양배추 시세 유례없는 강세에
작년 10월부터 가락시장 지속 반입
최근 약세 전환 맞물려 ‘원성’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2023. 11. 14
중국산 신선 양배추가 가락시장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1년이 넘도록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거래돼 온 것으로 밝혀져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올해 생산량 저조로 높은 가격 흐름을 보였던 양배추는 최근 가을 작황 회복으로 도매가격이 폭락하는 등 시세가 약세로 전환돼 출하 농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와 맞물려 산지의 공분을 부르고 있다. 출하자단체는 ‘수입산 양배추’ 거래 과정에서 불법 소지가 있다며, 관리 당국에 불법 행위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가락시장서 거래 사실 ‘수면 위’...중도매인 1명이 주도, 1032톤·6억3600만원치
가락시장에서 중국산 양배추가 거래되고 있는 사실은 출하자단체인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한유련)의 문제 제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한유련은 올해 5월부터 현재까지 중국산 신선 양배추가 매월 반입되고 있다고 했는데, 실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제공하는 가락시장 거래 정보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1년이 넘도록 중국산 양배추가 거래된 것으로 나타난다. 총 130여건 정도로, 정가·수의매매 형태로 2022년 10월 22일부터 2023년 11월 8일까지 물량은 1032톤, 금액은 6억3600만원 정도 거래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만 놓고 본다면 물량은 900톤대(950톤)로, 금액은 5억9000만원 정도다.
특이한 점은 특정 1명의 중도매인이 수입산 양배추 거래를 주도했으며,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6곳(농협공판장 포함) 중 평소 양배추 취급량이 많지 않은 ‘ㅈ청과’만 이를 지속적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해당 중도매인 역시 주거래 품목이 양배추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양배추 평균 수입가격(㎏ 기준, 최근 6개월간)은 5월 494원·6월 492원·7월 487원·8월 482원·9월 464원·10월 490원인데, 국내산 양배추 시세가 강세를 띠면서 수입 거래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양배추의 월평균 경매가격 추이(최근 6개월간)는, 1㎏으로 환산할 때 5월 1070원(8㎏ 기준 평균가 8564원)·6월 1045원(8365원)·7월 655원(5246원)·8월 1212원(9700원)·9월 1379원(1만1033원)·10월 1401원(1만1214원)으로 수입 단가와 차이가 두 배 이상 난다. 관세(27%)를 내더라도 수입산이 국내산보다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해 보인다.
한유련은 “ㅈ법인에 양배추가 필요하면 국내산을 제공하겠다는 말을 수차례 언급했으나 받아주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수입 양배추를 취급하고 있다”며 “이는 농업·농촌을 생각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수익이 우선시되고 생산자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전국의 양배추 생산자는 타 품목 생산자들과 연대해 이 행태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산 양배추를 취급해 온 도매시장법인 ㅈ청과 관계자는 “관련법(농안법)상 수탁거부 금지 원칙에 따라 거래를 해 왔던 것이고, 앞으로는 양배추 수입을 들여오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해당 중도매인에 요청한 상태”라고 전했다.
올해 1~9월까지 양배추 수입량은 4492톤으로,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수입량 4333톤을 넘어섰다. 양배추의 경우 99% 이상이 중국에서 수입되는데, 2021~2022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양배추 수입업체의 중국 입국이 많이 어려워진 영향 등으로 수입량이 급감했다가 올해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출하자단체, 서울시공사에 ‘정가수의매매 지침 위반 여부’ 조사 요청
이 문제와 관련해, 한유련은 정가·수의매매 지침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불법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장 개설자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서울시)에 요청한 상태다.
이들은 공사에 보낸 공문에서 “자체 파악한 중국산 양배추의 반입경로는 중도매인이 수입업자와 결탁해 반입을 주도했고 물건이 반입된 후 중도매인이 송장을 법인에 접수해주면 정가·수의 형태로 거래한 것으로 원장을 만들고 있다”며 “이는 기록상장 및 정가·수의거래 지침 위반으로 추정되고 있는 바, 해당 중도매인과 법인에 대해 심도 있는 조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분산의 경우에도 해당 중도매인이 다수의 중도매인(타 청과 포함)에게 뿌리는 형태를 취하고 일부는 가공업체에 보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중도매인 간 거래 부분에 있어 특정 비율을 넘길 수 없는 조항이 있는 바 이 부분의 조사도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공사 관계자는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불법 거래 행위가 있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수입 일상화 땐 국내산 입지 흔들…산지는 자급률 급감 ‘제2의 당근’ 될까 불안
산지에선 가락시장에서 양배추 수입이 장기간에 걸쳐 일상화될 경우 국내산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산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양배추 시세는 지난 몇 년간 좋지 않아 생산자들의 어려움이 컸는데, 올해의 경우 생산량 저조로 양배추 시세가 최근 몇 년간 유례없는 강세를 보였다. 국내산 가격이 오르자 이를 빌미로 수입산 양배추를 들여오는 행태에 대해 산지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양배추 시세는 가을 양배추 작황이 호전되면서 공급 물량이 늘어난 데다 김장철 양배추 소비가 줄면서 가락시장 도매가격이 폭락, 향후 전망이 밝지 않다. 양배추 시세(8㎏ 상품 기준)는 11월 9일 5729원, 10일 5336원, 13일 6230원, 14일 5699원으로 전월 대비 크게 떨어졌다. 김진구 대아청과 영업3팀장은 “현재 주산지인 서산 물량이 마무리됐고 이제 무안 쪽 물량으로 이동 중이다. 최근 작황이 좋아져서 반입량이 증가하는 추세인 반면 김장철 양배추 소비는 줄어 시세는 앞으로 약세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학종 제주양배추생산자연합회장은 “제주의 경우 물류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최소한 8㎏ 기준 하품 5000원, 중품 7000원 이상 나와야 하는데, 가락시장에 출하를 진행하다가 최근 시세가 좋지 않아 출하 작업을 중단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산 양배추가 가락시장에서 오랜 기간 버젓이 거래돼 왔고, 출하자단체의 중단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가 찰 노릇”이라고 전했다.
그는 “국내산 위주였던 당근 시장이 도매시장에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이제는 중국산 당근이 국내산 당근 점유율을 넘어서고 있다”면서 “양배추도 그렇게 될 우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당근의 경우 수입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국내산 입지가 크게 무너진 상황이다. 당근 자급률은 2000년 93.8%에 달했지만, 계속 감소하는 추세로 2022년에는 2000년대 들어 역대 최저치인 42.4%를 기록했다. 수입이 급증한 것이 원인으로, 2022년에는 국내 생산량 7만1000톤보다 더 많은 9만6000톤이 수입됐다.
이광형 한유련 사무총장은 “수입산 양배추가 가락시장에 지속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점도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부분은 양배추가 제2의 당근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락시장에선 앞서 2020년에도 수입산 양배추 거래 문제로 논란이 된 적이 있으며, 당시 생산자 반발과 이에 따른 도매시장법인의 ‘수탁 거부’로 수입산 양배추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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