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논산 양촌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서 작업자들이 상추 선별과 소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APC의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APC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용허가제·계절근로제 이용 막힌 지역농협 사업장
필요 인력 구하기 어려워 납품 시간 어길 때도 있어
급할 때는 가족 부르기도
“제도상 허점 지속될수록 농산물 공급 불안정 초래”
농민신문 논산=서륜 기자 2023. 11. 8
“농촌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은 농가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등 농협 농산물 유통 사업장도 인력난으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급하게 작업해야 하는데 일할 사람이 없을 때는 집에 있는 가족이라도 데려다 쓸 정도입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APC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6일 찾은 충남 논산 양촌농협(조합장 김기범) APC. 이 APC는 지역농가들이 생산한 상추를 선별하고 소포장해 이마트·쿠팡 등에 판매하거나 도매시장으로 출하한다. 하루 물량이 평일 기준으로 3㎏들이 1200∼1500상자에 달할 정도로 국내 상추 산지 유통의 중심지가 됐다.
APC 안으로 들어가자 작업자들이 상추를 검수한 후 비닐봉지에 150∼200g씩 쉴 새 없이 담고 있었다. 오후 6시30분에 이마트 물류센터로 출발하는 통합물류 트럭이 오는 시각에 맞춰야 해서다. 정해진 물량과 약속 시간을 지키려 APC 관계자들은 긴장감 속에 작업을 독려했다.
권기용 APC 센터장은 “대형마트 등 납품처가 고객에게 농산물을 잘 팔려면 APC가 납품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매일매일 그야말로 시간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납품 시간을 갈수록 지키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농촌 고령화 등으로 필요 인력을 제때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 상추 품위가 떨어져 선별 시간이 길어지거나, 휴일이나 연휴를 앞둬 물량이 늘어날 때는 납품 시간을 어기는 경우도 일이 왕왕 발생해 곤란을 겪기도 했다.
권 센터장은 “이럴 땐 아르바이트생이라도 몇 명 더 쓰면 되겠지만 돈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며 “상황이 아주 급할 때는 가족에게 SOS를 쳐 선별 작업을 부탁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더 큰 우려는 이달 말부터 지역에서 딸기 수확이 시작돼 심각한 인력 부족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양촌농협은 딸기를 처리하는 APC도 운영하고 있는데, 딸기 수확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하루에 40∼50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딸기 수확철에는 지역에서 인력이 씨가 마를 정도여서 사람 구하기가 ‘전쟁’ 수준으로 어려워진다.
그는 “딸기 수확철이 되면 지역의 대다수 인력이 농가의 수확 작업에 매달리기 때문에 APC는 선별·소포장 인력을 구하는 게 더 어려워진다”며 “이 기간에는 웃돈을 주고도 인력을 제때 확보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 농업에서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2023 농촌가구 자산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기준 농림어업 인력 부족률은 5.8%로 전체 직종(3.2%)보다 2배 가까이 높다. 고령화도 심각해 농가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49.8%로 도시에 비해 약 3배 높다.
이러한 인력 부족은 농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농협 APC도 심각하게 겪고 있어 더욱 주목해야 한다. APC는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개별 농가가 하는 작업을 한데 모아 규모화함으로써 작업 효율을 높이고 생산비를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농가가 과거에 하던 농산물 선별·포장·유통 작업을 대신 하는 셈이다.
이에 APC도 농가처럼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게 허용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표적인 제도인 고용허가제(E-9 비자)에 따르면 외국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업종에는 제조업·건설업·서비스업·조선업·농축산업 등이 있다. 이 중 농축산업에는 ‘작물재배업’과 ‘축산업’ 등만 해당한다. 쉽게 말해 농가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또 다른 제도인 계절근로제(E-8 비자)도 농가나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만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을 하는 공공형 계절근로제 역시 APC는 이용할 수 없다.
김기범 조합장은 “APC 기능이라는 게 결국에는 농민이 하는 농산물 생산활동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 중요한 일을 한다”며 “농민이 하던 일을 대신 하고 있는데 농민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고 APC는 할 수 없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PC가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을수록 농산물을 시장에 공급하는 기능도 약화돼 농산물 공급 불안정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원지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촌에 인력 자체가 부족한 데다 APC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급여도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이기 때문에 젊은이 등 내국인을 유인할 동력이 더 떨어진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해 농산물 유통의 필수 시설인 APC의 인력 수급에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