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개발 수요에 따른 농지 전용이 심각한 가운데, 농지 규제를 더욱 완화하자는 내용의 보고서가 최근 공개돼 농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농민신문 DB
[초점] 경자유전을 농지농용으로？
‘농지규제 합리화 연구’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소유보다 이용에 방점 두는 ‘농지농용’으로 대전환
농민 아니더라도 취득 허용하고 전용 규제도 완화
정부도 규제 완화에 무게...농업계 술렁
“농지 가격 상승으로 오히려 신규 농민 유입 막을 것”
전문가 “지자체 전용 승인권한 확대되면 남발 우려”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 2023. 11. 5
경자유전 원칙을 근본적으로 폐기하고 농지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는 내용의 보고서가 최근 국무조정실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인다. 보고서는 ‘농민 재산권 침해’ ‘농촌 저개발’ 등을 문제 삼으며 농지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데, 농업계는 그 뒤에 개발 목적으로 농지를 잠식하려는 속셈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보고서 내용은=최근 산업에너지환경연구소는 국무조정실에 ‘농지이용규제 합리화 연구’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골자는 농지 규제를 전방위적으로 완화하자는 것이다.
보고서는 농지 규제 완화의 대전제로 농지 개념의 재정립을 제안했다. 농민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경자유전’ 원칙 때문에 농지의 자유로운 거래와 임대차 등이 제한되면서 농민은 재산권을 침해받고 농업은 규모화·산업화를 이루지 못한다면서다. 그러면서 “경자유전 원칙은 근본적으로 폐기해야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농지농용’으로 수정하는 것을 고려하자”고 밝혔다. 농지농용은 농지 소유를 규제하기보다 농지가 농업에 이용되는 방향으로 관리하는 원칙을 말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게 농지 취득·소유 규제 완화다. 보고서는 비농민이라도 이농·상속 등의 사유가 있다면 농업진흥지역 바깥에선 농지를 5㏊(현행은 1㏊)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깐깐한 농지취득자격증명제도와 농지위원회 심의를 손질하자고 제안했다.
또 현재 불가피한 사유에 한해 허용되는 농지 임대차를 전면 허용해 신규 농민과 기업의 농업 진출을 돕자고 주문했다.
농지 전용 제도 개선도 촉구했다. 농업진흥지역 중 우량농지인 ‘농업진흥구역’을 제외하고는 개발 수요에 따라 과감히 전용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의 전용 승인 권한을 줄이고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은 확대하자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농업진흥구역의 점진적 해제를 건의했다.
◆농지 규제 완화 목소리 곳곳서=농지 규제 완화 일변도의 보고서가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국무조정실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농업계는 술렁인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농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공연히 나오는데, 보고서가 이런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활용되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시절 “오래전부터 농사짓던 분들이 경자유전에 집착한다”고 말해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최근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자유전으로 국토부가 농지·산지·해양·국립공원은 손도 못 댄다”면서 “농지 이용 대전환을 생각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 농지 정책 원칙을 묻는 질의에 “우량농지는 보전하되 소멸지역은 외부에서 자본이나 인력이 들어올 수 있도록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농지 규제의 부분적 완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말 식량안보 차원에서 농지를 150만㏊ 수준까지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정 장관은 “대단히 어렵지만 150만㏊ 중 우량농지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모호한 답변을 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의 장태평 위원장도 “경자유전 원칙에서 벗어나 (청년농이나 전업농 등) 농사지으려는 사람이 쉽게 농지를 임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농업계 강한 우려=경자유전은 현실에서 완벽하게 지켜지진 않지만 무분별한 농지 잠식을 막는 마지노선 역할을 한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농업계는 경자유전 원칙이 흔들리며 그 피해가 농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한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경자유전이 무너지면 농지 가격 상승은 불 보듯 뻔하고, 이로 인해 신규 농지 취득이 어려워져 청년농 등의 농업 유입이 저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가 농지 규제 완화를 위해 억지 논리를 펼쳤다는 비판도 거세다. 국내에 농지농용 개념을 처음 소개한 박석두 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은 “농지농용은 농지가 농업에만 쓰이도록 제한하는, 경자유전보다 더 강력한 원칙”이라면서 “농지 전용의 엄격한 제한은 물론 농지 개발 수요가 낮아져 자연히 소유도 제한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보고서는 농지농용 개념을 끌어다가 농지 전용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강력한 농지 전용 규제로 농촌 개발이 제한되고 있다고 진단하지만, 이와 달리 이미 농지 전용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우량농지도 예외가 아니다. 2002∼2021년 국내 농지 전용 면적은 모두 31만8000㏊로 연평균 1만6000㏊가 전용됐다.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도 5만7000㏊나 있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산업단지나 택지 개발로 우량농지에서도 대규모 전용이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면서 “현재 대규모 전용은 농식품부가 승인 절차를 통해 제한하는데 이런 권한이 지자체로 넘어갈 경우 선거에 민감한 지자체장의 농지 전용 결정이 남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농민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농지 규제 완화를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별개의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연구위원은 “정부가 농업분야 국정과제 최상단에 자급 개념인 ‘식량주권 확보’를 올려놓지 않았느냐”면서 “식량주권을 수호하면서도 각종 규제로 재산권을 침해받는 농민에게 지금보다 더 강한 제도적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농정신문] “농산물 1회용 포장재 사용량 감축 본격화해야” 
[농민신문] “비료값 인상분 정부 지원 절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