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진주문산농협 조규석 조합장(왼쪽)과 박익재 지도계장(오른쪽)이 단감농가 김현철씨의 과수원을 찾아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이렇게 심한 탄저병은 난생처음 본다”며 “사실상 올해 농사는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남부지역 단감 탄저병 확산
제주감귤은 열과현상 심각
내병성 강한 품종 개발 필요
농법 변화·보험 역할 강화도
경남지역 탄저병 확산
대다수 농가 생산량 급감 예상
정부에 약정 물량 출하 어려워
위약금 면제·폐기비용 지원 등
다양한 지원방안 모색 나서야
농민신문 진주 창원=최상일, 이문수 기자 김해 울주=김광동 기자 2023. 9. 25
추석을 앞두고 수확의 기쁨을 맛봐야 할 과수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봄철 저온피해에 여름철 폭염·집중호우가 9월까지 반복되면서 사과·복숭아·포도·대추 등 과수에 병충해가 확산해 수확할 게 없다고 아우성이다. 사과·복숭아는 크고 작은 반점이 생겨 땅에 떨어져 썩고, 포도는 송이째 썩는 피해가 속출했다. 최근 남부지역 단감 역시 열매에 반점이 생기고 물러지는 탄저병이 급속히 퍼지고, 제주감귤은 열과가 심해 생산량이 급감할 처지에 놓였다.
유례없는 고온다습한 극한기후가 과수를 포함한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 농업계 전반에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병충해 강도가 세지고 확산 속도도 빨라지는 상황에 대응해 효과를 기대할 만한 새로운 방제약 개발이 시급해졌고, 기존 재배방식도 고온다습한 아열대기후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가의 경영 안정을 도모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줘야 할 농작물재해보험도 시험대에 올랐다. 재해보험이 보장하는 병해충이 한정적인 데다 ‘표준수확량’ ‘표준생장일수’ 같은 보상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다.
이상기후는 자연현상인 만큼 이에 따른 병충해 방제 부담을 오롯이 농가에 지워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농가들은 “병해충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농작물재해보험의 피해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등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 좀 보십시오. 탄저병에 걸려 떨어져 썩었거나, 아니면 곧 그렇게 될 단감뿐입니다. 멀쩡해 보이는 녀석들도 태반은 까만 점이 박혀 있어요. 30년 넘게 단감농사를 지었지만 이렇게 처참한 적이 있었나 싶어요. 우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21일 경남 진주시 문산읍 일대에서 3만9669㎡(1만2000평) 규모로 단감농사를 짓는 김현철씨(66)는 바닥에 나뒹구는 단감을 보여주며 고개를 푹 떨궜다. 과원 작업로와 바닥 곳곳에는 수확까지 한달 넘게 남은 만생종 ‘부유’ 단감이 떨어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단감이 힘없이 툭툭 떨어졌다.
나무에 겨우 매달려 있는 단감은 맛이 채 들기도 전에 무른 홍시가 됐거나, 크고 작은 까만 점이 생겨 상품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과실 표면에 생긴 까만 점은 탄저병의 전형적인 병변이다. 이후 점은 점점 커지면서 움푹 꺼진 타원형의 병반이 된다. 결국 단감은 쉽게 물러지고 꼭지가 약해지면서 떨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탄저병은 습기를 타고 번지는데 올해는 특히 7∼8월 계속된 긴 장마에 더해 야간에도 25℃ 이상의 고온이 이어지며 손쓸 틈 없이 확산했다. 9월에도 비가 자주 내리면서 확산세가 쉬이 꺾일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김씨는 “올해 탄저병 방제를 13번이나 했는데도 이 지경”이라며 “이대로면 수확기 때 피해율(탄저병 감염 개체 비율)이 9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약제비는 물론 인건비·자재비를 포함해 그간 들어간 수천만원의 비용이 고스란히 적자로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고 했다.
현장을 함께 찾은 조규석 진주문산농협 조합장은 “주변 농가도 상황이 훨씬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한 곳은 없고 급기야 올 농사를 포기하겠다는 말도 나온다”며 “농가 피해를 줄이는 데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산읍 일대에서는 279농가가 309㏊에서 단감을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출하물량은 4076t에 달한다.
속수무책의 상황을 호소하기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창원에서 2만6450㎡(8000평) 규모로 단감농사를 짓는 김종출씨(68·의창구 동읍)는 “방제 횟수를 크게 늘리고 병변이 생긴 열매와 가지를 수시로 정리해 매립하고 있지만 이번 탄저병 기세는 예년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농가별로 편차는 있겠으나 수확량이 30∼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해지역에서도 생산량 급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김해 일대에는 1600여농가가 915㏊에서 단감을 재배하고 있다. 3만3057㎡(1만평) 규모로 단감을 재배하는 구용섭씨(69·진영읍)는 “봄부터 비가 자주 내리고 이후에도 고온다습한 날이 이어지면서 심한 농가는 피해율이 60%에 이른다”고 했다.
농협 관계자들은 현재 김해 일대 단감농가 피해율을 평균 30∼40%로 보고 있지만, 수확에 들어갈 때까지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진다면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장선우 경남단감원예농협 과장은 “앞으로도 비가 잦아진다면 기온이 떨어져 낙엽이 쌓이게 되면 탄저균이 활성화해 올해 작황은 상당히 저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주산지인 사천·함안·창녕 지역 농가와 농협 역시 40% 넘는 생산량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범서읍 단감농가도 울상이다. 범서농협 관계자는 “2년 전 탄저병으로 심한 타격을 받은 단감농가들이 올해는 군의 지원으로 일찍부터 방제에 나섰는데도 워낙 궂은 날씨가 이어지다보니 일부 농가는 30% 정도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올해 단감 생산량이 크게 줄어 농가 수익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수출에도 큰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정부의 과실출하약정사업에 참여해 출하선급금을 받은 농가는 탄저병 피해로 단감 계약물량을 맞추지 못한다면 14%에 달하는 위약금까지 물게 되는 이중고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박홍필 김해 진영농협 과장은 “정부의 과실출하약정사업에 40농가가 계약했는데, 탄저병으로 상당수가 계약물량을 채우지 못해 위약금을 물어야 할 판”이라며 “탄저병이 극성을 부린 특수한 상황임을 고려해 올해는 농가에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남단감원예농협 관계자도 “올해 우리 농협 조합원 가운데 75농가가 총 1400t을 출하하기로 과실출하약정사업에 계약했는데, 몇농가나 계약사항을 이행할 수 있을지 모를 아주 비관적인 상황”이라며 “피해 농가가 위약금을 무는 것은 물론 차기연도 사업 참여에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가들은 “약제비와 탄저병 발병 과수 폐기비용 지원, 지자체 차원의 공동방제 제도화, 자연재해성 병충해는 재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의 농작물재해보험 개선에 나서달라”고 정부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남농협본부는 20일 김주양 본부장, 이상득 동읍농협 조합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창원시 의창구 동읍 일대 단감농가를 방문해 긴급 현장 점검을 하고 농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26일에는 단감경남협의회 긴급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 본부장은 “단감 전국 생산량의 72%를 차지하는 핵심 지역인 경남의 농가들이 탄저병 확산에 따른 상품성 저하와 생산량 감소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큰 상황”이라며 “피해 농가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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