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면세유 가격도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수확철을 맞아 농가들의 생산비 부담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면세유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와 농가들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자발적 원유 감산 조치를 연말까지 연장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국제유가는 올들어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제유가 지표인 두바이유·브렌트유는 6월 넷째주에 1배럴당 각각 75.21달러·73.94달러까지 떨어진 이후 줄곧 오르더니 이달 12일에는 각각 92.34달러·92.06달러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면세유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오피넷(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농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면세경유는 지난해 7월 1ℓ당 1651.97원까지 치솟았다가 올 7월 1058.53원으로 떨어졌다. 이후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더니 8월 넷째주에는 1204.29원으로 다시 1200원대를 돌파했으며 9월 첫째주에는 1235.05원을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있는 만큼 앞으로 면세유 가격은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농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올들어 일반 기름값이 안정세를 보일 때조차 면세유 가격은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면세유 가격이 또 상승 곡선을 그린다면 생산비 부담이 극심할 것이라고 토로한다. 일반 유류는 2021년 11월부터 시행한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로 비교적 싸게 공급되고 있다. 반면 면세유는 별다른 지원이 없어 농가들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충격을 그대로 받는다.
75㏊(23만평) 규모로 벼농사를 짓는 유호창씨(42·충남 서천)는 “2021년까지만 해도 1ℓ당 700원대였던 면세경유 가격이 지난해부터 가파르게 올랐다”며 “10∼11월에 트랙터·콤바인 등을 많이 사용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용 면세유 제도의 일몰기한이 관성적으로 연장돼왔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농가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1986년 도입된 농업용 면세유 제도는 수차례 일몰기한 연장을 거치면서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올 7월 정부는 일몰기한(2023년 12월31일)이 도래한 농업용 석유류의 세제 감면 기한을 2026년 12월31일로 3년 연장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최근 ‘2023 조세특례 심층평가’ 보고서를 통해 농업용 면세유 제도 일몰 연장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제도의 효과성·타당성을 분석한 결과 농업용 면세유 제도가 농업 생산성과 소득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조세연은 농업용 면세유 제도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이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과 모순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면세유 등 화석연료보조금이 화석연료 소비를 조장하는 만큼 많은 국가가 이를 줄여가는 추세에서 농업용 면세유 제도는 탄소중립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다만 제도를 폐지할 경우 농민이 받을 타격을 감안해 추가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지난해 농업소득은 949만원으로 전년 대비 26.8% 줄었는데 농사용 전기요금, 면세유 등 농업용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농업경영비가 급증했기 때문”이라며 “농촌 인력난 심화로 농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농업 생산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면세유 지원이 계속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