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 개편 등 선제적인 수급조절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에 나섰다.
생산자 “요구 상당부분 반영
일관성 갖고 운용할지가 관건”
농민신문 이민우 기자 2023. 8. 3
정부가 농산물에 대한 선제적인 수급관리 기능을 강화하고자 대대적인 제도개선에 나섰다. 특히 이번 제도개선안에는 정부 수매비축과 저율관세할당(TRQ) 수입 추진 등 수급 정책의 판단 기준이 되는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 개편이 포함돼 있어 생산자들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원예농산물 수급관리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재배면적 사전관리 체계 구축, 채소가격안정제 전면 개편을 통한 가격 위험관리 기능 강화 등이 포함되는 등 전반적으로 정부의 수급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성됐다.
그중 생산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수급관리 가이드라인’ 개선 대책이다. 이는 2018년 이후 별도 개정 없이 운용되던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에 대한 개편안으로 올해 개정 주기(5년)를 맞아 시행된 것이다. 매뉴얼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8조에 따라 2013년부터 운영해온 농산물 수급조절위원회가 정부의 시장 개입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정책 도구다. 예컨대 품목별로 상승과 하락 구간별 주의·경계·심각 단계의 기준 가격을 설정하고 각 단계에 따라 TRQ 조기 도입과 증량, 비축물량 방출 억제 등 정부 대책을 제시하는 식이다.
이번 개선책은 매뉴얼의 명칭을 ‘수급관리 가이드라인’으로 변경하고 그동안 생산자들이 제기했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생산자들은 매뉴얼의 개정 주기가 5년으로 설정돼 급변하는 산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에 정부는 위기 단계별 기준 가격을 ‘평년 가격’으로 개선하고 이를 매년 갱신해 현실화한다는 구상이다.
기존 매뉴얼은 최근 10년간 가격을 분석해 산출한 데이터를 위기 단계별 기준 가격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책 일선에서는 매뉴얼의 기준 가격보다는 평년 가격을 정책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가이드라인의 기준 가격을 평년 가격으로 통일해 산지의 혼란을 줄인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매년 갱신할 경우 ‘생산비를 반영한 기준 가격 산출’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통계청의 ‘농산물 생산비조사’와 농촌진흥청의 ‘농산물소득자료집’을 참고해 농가 경영비를 산출, 기준 가격에 반영해 경영비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갱신 주기가 5년에서 1년으로 단축되면 최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 생산비 증가 등 급변하는 산지 상황을 기존보다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유명무실했던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를 분기별로 개최하는 등 정례화해 수급 불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방침이다. 농식품부 유통정책과 관계자는 “수급관리 가이드라인을 매년 갱신하는 등 현실화를 통해 농산물 가격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농산물수급조절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정부의 개선안에 대해 생산자들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준 가격 현실화 등에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개선안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태문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은 “기존에 정부는 농산물 가격이 상승할 때는 기준 가격을 준수해 수급 대책을 시행하고 가격이 하락할 때는 기준 가격은 단순히 참고용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다”며 “가이드라인 개편도 중요하지만 수급 정책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있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기준 가격 현실화 등 출하자들의 요구사항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정부는 기존에도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고 수급 대책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향후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개선안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