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떨어진 물폭탄으로 충청·전북·경북 등에 홍수와 산사태가 잇따르고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삽시간에 기록적인 양의 비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교통 통제 등 적절한 행정 조치가 늦어지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동안 평년 장맛비 이상 쏟아져=현재 한반도 북쪽에는 차고 건조한 공기를 밀어내는 절리저기압이 자리 잡고 있고 남쪽에서는 북태평양고기압을 통해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되고 있다. 이 두 공기가 충돌하는 경계에서 정체전선이 활성화하고 강한 비구름대가 발달해 이번 장마에 영향을 주고 있다.
장마 초기에는 한반도 비구름대가 남북으로 길고 동서로는 좁은 모양이었다. 이런 비구름대가 한반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한 장소에 비가 내렸다가 금세 그치는 ‘도깨비 장마’가 이어졌다.
하지만 13일부터는 비구름대가 가로로 길게 누운 모양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한 지역에 긴 시간에 걸쳐 비를 퍼부었다.
이번 장마는 그야말로 전에 없던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다. 장마가 시작된 6월25일부터 이달 15일까지 강수량은 중부지방이 489.1㎜, 남부지방도 473.4㎜에 달했다. 각각 평년 강수량보다 1.1배, 1.2배 많은 양이다. 평균 장마 기간은 31∼32일인데, 올해는 그보다 짧은 20일 동안 평년보다 많은 비가 전국에 쏟아진 셈이다.
특히 이처럼 장기간 이어진 폭우로 지반이 약화되면서 전국에서 산사태 피해가 속출했다. 경북에서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예천은 8일부터 쉬지 않고 비가 내렸는데 여기에 13일부터 사흘 동안 241.9㎜의 기록적인 비가 더해지면서 피해가 잇따랐다. 해당 강수량은 예천 연간 강수량 1396㎜의 6분의 1에 달한다.
◆“대비했더라면 막았을 인재(人災)”=하지만 이번 피해를 천재로만 치부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오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선 미호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차량 10여대가 물에 잠기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17일 오전 11시 기준 13명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사고 가능성을 알리는 ‘경고음’이 여러번 울렸다는 점이다. 실제 금강홍수통제소는 15일 오전 4시10분 미호강에 홍수경보를 이미 발령한 상황이었다. 이후에도 비가 쏟아지면서 미호강 수위는 ‘심각’단계까지 도달했다. 그럼에도 다른 도로보다 지대가 낮고 미호강과 인접한 지하차도는 통제되지 않았다. 정창삼 인덕대학교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지하차도는 사전에 차단했어야 하는 구간이 분명한데도 골든타임을 놓쳐 안타깝다”고 밝혔다.
경북에서는 산사태 위험이 예견됐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주민 대피가 ‘권고’에 그치면서 참사를 막지 못했다. 경북은 사망과 실종 등 피해가 속속 확인된 15일 오후 9시에야 산사태 위험 및 상습침수지역 주민 등을 대상으로 대피 ‘명령’을 발령했다.
기상이변으로 이번 같은 재난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응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북의 경우 17일 오전 6시 기준 12명의 산사태(매몰) 사망자가 나왔는데 이 가운데 10명이 ‘산사태 취약지역’이 아닌 곳에서 참변을 당했다.
우충식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 연구관은 “지자체마다 산사태취약지역을 지정해 관리하는데 이를 무제한으로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기후위기 시대, 안전한 지역은 없다는 인식 아래 지자체는 재난 대응을 적극 안내하고 주민들은 적극 동참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 연구관은 또 “나뭇잎은 비를 차단하고 나무 뿌리는 흙을 고정하는 말뚝·그물 역할을 하는데, 태양광 발전시설 등 개발로 숲이 훼손되면 산사태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면서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곳엔 그에 따른 충분한 재해시설 보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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