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위 물론 2분위 가구도 ‘적자’
더 이상 소비 줄일 여력 없고
소득도 못늘려 부채 누적 악순환
자력으로 빈곤 탈출 쉽지 않아
생계비 보장 등 대책 모색을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2023. 6. 30
농가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뿐만 아니라 2분위(하위 40%) 가구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은’ 적자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2분위 가구는 가처분소득의 절대적 수준이 낮고, 더 이상 소비를 줄일 여력은 없어 가계 부채 누적으로 인한 ‘빈곤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한국농촌사회학회와 지역사회학회가 지난달 23일 ‘글로컬시대, 지역과 농촌의 도전’을 주제로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개최한 공동심포지엄에서 ‘농가경제의 불평등 실태와 개선방향’ 발표를 맡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미선 부연구위원은 이같이 밝혔다. 박 부연구위원은 통계청의 2013년과 2021년 농가경제조사 자료를 이용해 소득 5분위별 가처분소득과 소비 지출 규모를 분석, 이같은 결과를 도출해 냈다.
# 농사로는 먹고 살기 어렵다
2013년 대비 2021년 소득분위별 농가소득의 특징을 살펴보면 모든 소득분위에서 농가소득이 증가한 가운데, 5분위(상위 20%)의 증가분이 컸다는 점이 확인된다.
해당기간 1분위는 540만원→888만원(348만원), 2분위는 1237만원→1680만원(443만원), 3분위는 1817만원→2416만원(599만원), 4분위는 2821만원→3442만원(621만원), 5분위는 5167만원→6707만원(1540만원)으로 늘었다. 1~4분위까지는 증가분 차이가 크지 않은데, 4분위와 5분위의 능가분 격차는 매우 크다. 그만큼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저소득 가구일수록 공적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최근으로 올수록 그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2013년 1분위 가구 소득 540만원 중 공적 이전소득은 237만원으로 44%를 차지했다. 2021년에는 888만원 중 공적 이전소득이 631만원으로 그 비중이 71%까지 높아졌다. 반면 농업소득은 두 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적자 폭은 더 커졌다.(-81만원→-124만원).
‘농사로는 먹고 살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다른 경제활동을 하거나 정부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현상’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 소비지출을 더 줄일 수도 없다
소득분위별 소비지출에서 가장 주목할 특징은 소비의 하한선이 매우 명확하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1분위 가구의 소비지출은 1469만원. 미미하긴 하지만 2분위의 소비지출(1433만원)보다 많았고, 3분위(1590만원)와의 격차도 크지 않았다. 아무리 벌이가 적어도 필수 생계비는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1분위 가구의 경우 소득(888만원)과 소비지출(1469만원)의 차이가 매우 커서 가계 부채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2021년 기준 1분위 가구의 평균 가계용 부채 잔액은 1817만원으로, 상대적으로 부채 상환능력이 높은 5분위 가구의 1160만원 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부연구위원은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은 이상 자력으로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3~5분위 가구 소비도 정체상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3~5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이 감소하고 있는 점도 짚어볼 문제라는 지적이다. 가처분소득 중 소비로 지출한 비율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3분위가 2013년 91에서 79로, 4분위는 77에서 64로, 5분위는 56에서 39로 줄었다. 소득이 증가한 만큼 소비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박 부연구위원은 “이미 충분한 소비 활동을 하고 있어 소비가 증가하지 않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개인의 효용이나 사회 후생은 소득보다는 소비와 더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소득 증가에 비례해 소비가 증가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소비지출 정체의 원인으로 ①고령화의 심화 ②농가 소득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농가의 예비적 저축(부채 상환 포함) 증가 ③미래소득 증가를 위한 농업 혹은 겸업 활동에 대한 투자 등을 꼽았다.
# 농가 특성 따른 맞춤형 정책 필요
그렇다면 저소득 농가의 소득과 소비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더 이상 소비를 줄일 여력이 없다면 소득을 늘려야 하는데, 저소득층의 경우 경영주 평균 연령이 높고, 가구원 수는 적어 농업소득이나 농외소득 증가가 어렵다. 대부분 경지면적을 기준으로 지원하는 공적 이전소득 증가 또한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박 부연구위원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농지연금제도와 같은 사회보험을 통해 소득-소비의 불균형을 해결하고, 자산이 없는 경우에는 기초연금제도 및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를 통해 매월 일정한 생계비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연간 120만원을 지급하는 소규모농가 직불금을 강화하거나, 부채문제 해결을 위해 저금리의 정책 대출을 증가시키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3~5분위 가구에 대해선 농업 경영을 둘러싼 불확실성 제거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농산물 가격변동, 경영비 상승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제거하면 소득의 예측 가능성이 증가하고, 그러면 소비가 늘어 농가 후생의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구체적 정책 대안으로 현재 시범사업 중인 농업수입보험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거나, 농작물재해보험의 위험관리기능을 강화하고, 캐나다 농업투자계정처럼 농가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적립(적립의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매칭해 추가 적립하는 구조)하고 필요시 인출해 사용할 수 있는 계정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미선 부연구위원은 “농가소득의 감소는 농촌 인구의 유출을 촉진하고 도시 인구의 유입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구의 자연감소가 빠르게 진행 중인 상태에서 이같은 사회적 감소까지 더해지면 농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서 “농가 특성에 맞는 세심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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