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수입 양파를 도매시장에 방출해 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있어 생산자들과 유통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위해 양파를 옮기는 모습.
‘상승경계’ 단계에 못미치는데 이달 일평균 100t 넘게 방출
1㎏ 상품 1000원대로 ‘털썩’
TRQ 수입 가능성까지 있어 생산자·유통인 불안감 고조
농민신문 이민우 기자 2023. 6. 20
전국 양파 주산지에서 중만생종 수확이 한창인 가운데 정부가 중국산 수입 양파를 도매시장에 방출하면서 의도적으로 가격 하락을 유도해 생산자들과 유통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상 위기단계가 아님에도 지속적으로 수입 양파를 풀고 있어 정부가 물가안정을 명분 삼아 무리한 국산 농산물 가격 잡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올초 강세를 이어가던 국산 양파값은 최근 하락세가 지속됐다. 16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양파는 1㎏들이 상품 한망당 평균 1073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1344원)보다 20.2% 낮은 값이다.
양파값은 지난해산 재고량 부족 영향으로 올 1∼3월 1400∼1600원대를 오가며 지난해보다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3월말부터 조생양파가 출하되며 하락세가 시작됐고, 최근에는 1000원대로 주저앉으며 지난해 대비 약세로 전환됐다.
최근 나타난 하락세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초 보도자료를 통해 6월 안에 수입 양파 5000t을 하루에 200t 내외로 도매시장에 방출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정부가 보유한 수입 양파는 전국의 다수 도매시장이 아닌 가락시장 한곳에 집중 출하된 것으로 파악된다. 농산물 기준가격을 산출하는 가락시장 가격을 낮추면 전국 양파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가락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수입 양파 방출은 5월 하순부터 시작됐고, 6월 들어 물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가락시장의 수입 양파 반입량은 5월20∼31일에는 일평균 21t에 불과했으나, 6월5∼15일은 일평균 190t으로 9배 이상 급증했다.
유승철 동화청과 경매사는 “기온이 오르고 경기가 둔화되면서 양파의 가정용 소비는 줄고 식자재용 소비가 늘고 있는데, 수입 양파가 식자재 수요를 잠식해 시세를 주도한다”며 “최근 정부 방출 물량이 크게 늘면서 수입 양파뿐 아니라 국산 양파 가격도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최근 양파 시세가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상 위기단계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정부가 수입 양파를 지속적으로 방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산물 수급조절 매뉴얼에 따르면 정부가 비축물량 공급 등의 대응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상승경계’ 단계 가격은 6월 기준 1㎏당 1437원이다. 하지만 최근 1주일(10∼16일) 가락시장의 평균 시세는 1101원에 불과했음에도 정부는 일평균 100t 이상 수입 양파를 방출하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생산자들은 올해 양파 생산비가 올라 농가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 잡기에 급급해 인위적인 가격 조절에 나섰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현재 모든 농산물 수급정책은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시행되는데, 정작 양파값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게 현실”이라며 “수입 양파는 대부분 식자재 업체 쪽에 유통되는데 결국 소비자들이 아닌 대형 업체들만 돈을 버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정섭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도 “비료값·자재값·인건비 등 모든 게 다 오른 상황에서 단순히 지난해·평년 가격과 비교해 비싸다고 판단하고 수급조절에 나서면 안된다”며 “생산비 개념을 도입해 생산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수급조절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생산자와 유통인들 사이에서는 중만생종 양파 수확이 마무리된 후 정부가 저율관세할당(TRQ) 수입을 강행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석규 한국농산물냉장협회장은 “이미 상당수 양파 저장·유통 업체들이 지난해 대규모 TRQ 수입으로 적자가 누적된 상황”이라며 “정부가 올해에도 TRQ 수입을 통해 양파값을 매입 가격 이하로 낮추면 유통업계가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선욱 한국양파생산자협의회장(경남 함양농협 조합장)은 “TRQ로 저렴한 수입 양파가 유통되면 농협 등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수매·비축 등의 대책 마련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최근 수입 양파 방출은 가격 강세에 따른 통상적인 절차였다며, TRQ 수입 관련해선 당분간 시장 상황을 관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식품부 원예산업과 관계자는 “전남 무안지역 양파가 병해로 품위가 좋지 않아 예상보다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해 시장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수입 양파를 출하한 것”이라며 “현재 중국 현지 양파값이 하락해 민간 수입량이 늘어난 만큼 TRQ 수입은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