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충북 충주시 동량면 일대 사과밭을 덮친 우박으로 수확을 한달여 앞둔 ‘쓰가루’ 사과가 처참하게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돌풍 겹쳐 밭·과수원 ‘초토화’
인력·농자재 선지원 후조사를
전국 곳곳 우박 ‘폭격’
지름 최대 2㎝ 우박에 피해
복숭아엔 탄저·천공병 번져
3월부터 이상기후 연속 발생
세균침투 쉬워져…천재지변
농민신문 제천·충주=황송민, 화천=김윤호, 청도=유건연, 포천=오영채, 진안=박철현 기자 2023. 6. 12
“갑작스러운 우박에 오이밭이 쑥대밭이 됐는데, 만성적인 인력난에 누구 손을 빌려야 할지, 대체작물을 심어야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합니다.”(박상현씨·충북 제천시 금성면)
“우박으로 상처를 입은 포도는 병충해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무엇보다 살균제를 빨리 지원해줬으면 좋겠습니다.”(최영필씨·경기 포천시 내촌면)
10~11일 돌풍을 동반한 강한 비와 우박이 쏟아져 전국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12일 충북 제천에서 만난 박상현씨(54)의 오이밭은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전날 오후 3시경 20분 동안 대추만 한 크기의 우박이 강풍과 함께 금성면 일대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어른 가슴팍까지 자랐던 오이는 줄기가 꺾이고 이파리와 열매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박씨는 “밭에 깔아놓은 멀칭필름에 구멍이 날 정도로 강한 우박에 50여농가가 봄부터 애지중지 키운 오이밭이 다 망가졌다”며 “줄기가 꺾인 것은 물론 이파리까지 남아 있지 않아 자식 같은 오이를 뽑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며 망연자실했다.
제천 금성농협(조합장 장운봉)은 12일 내린 우박에 지역 밭작물의 90% 이상이 피해를 본 것으로 보고 있다. 장운봉 조합장은 “나무가 뽑힐 정도의 강풍과 갑작스러운 우박에 밭작물이 전멸하다시피 됐다”며 “피해를 본 농작물을 뽑고 새 작목을 심으려면 많은 인력과 도움이 필요한 만큼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충주 중원농협(조합장 진광주)에 따르면 동량면과 금가면 일대는 사과·복숭아·고추·참깨·담배·옥수수 등 농작물 피해 규모가 전체 재배면적의 71.5%인 253㏊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12일 오전에 찾은 강원 화천군 상서면 산양리에 있는 이병찬씨(60)의 오이밭도 우박 피해의 흔적이 역력했다. 10일 오후 상서면·사내면 등 화천 북부지역에 지름 2㎝ 크기의 우박이 30여분간 기습적으로 떨어져 9917㎡(3000평)의 이씨 농장은 쑥대밭이 됐다. 언뜻 둘러봐도 오이 잎이 구멍 나거나 갈기갈기 찢겨 성한 것이 거의 없어 보였다.
밭 곳곳을 둘러보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이씨는 “우박이 순식간에 어찌나 많이 내리던지 바닥이 온통 새하얘졌고, 차 유리가 깨질까봐 운행조차 힘든 상황이었다”며 “오이 생장점이 다 망가진 상황이라 어떻게 살려본다 해도 수확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 같아 막막할 따름”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원농협본부에 따르면 10∼11일 화천·양구·홍천·원주·평창 등 5개 시·군에 지름 0.2∼2㎝의 우박이 내려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화천 40㏊, 양구 58㏊, 평창 66㏊에 피해가 집중됐다.
경기 포천 역시 10일 강한 비와 함께 지름 1㎝ 안팎의 우박이 내리면서 과실과 노지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12일 포천시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포천지역의 우박 피해 농가는 96곳, 피해 면적은 23㏊에 달하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영북면 8㏊, 신북면 4.8㏊, 내촌면 2.3㏊ 등이다. 시농기센터는 20일까지 피해 농가를 대상으로 신고를 받고 있다.
김창길 포천 가산농협 조합장은 “우박으로 이곳 포도농가들이 큰 피해를 봤다”며 “과실 손상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살균제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전북 진안군은 10일 국지성 호우와 돌풍·우박으로 수박과 고추·담배 등 농작물 피해가 150여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진안군에 따르면 특히 안천면의 피해가 큰 것으로 확인됐으며, 농작물의 가지·잎·과실 등 성한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도는 11일 기준 진안·임실·순창·무주를 포함해 총 74.4㏊ 피해(고추 28㏊, 수박 16㏊, 담배 3.5㏊ 등)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봉현면 일대에도 8일 오후 30분 동안 최대 지름 2㎝의 우박이 강타했다. 이 때문에 12일 오전 기준 830농가 780㏊(잠정) 과원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또 인접한 예천군 일대에도 우박이 내려 사과와 고추 등 134㏊ 규모의 피해(잠정)가 보고됐다. 특히 수확을 한달여 앞둔 사과 열매는 총알처럼 쏟아진 우박에 갈라지고 곳곳에 흠집이 생기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경북농협본부는 원활한 복구 지원을 위해 신속한 농작물재해보험 처리는 물론 피해 농가 인력지원, 영양제 공급, 피해 열매 판로 확보 등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3월 이상고온 현상, 4월 서리와 저온피해, 5월 폭우를 동반한 잦은 비, 잇따른 이상기후가 농사 전반에 직격탄을 날린 가운데, 체질 약해진 농작물이 병해충에 속수무책 피해를 입고 있다. 특히 수확을 한달 앞둔 복숭아에 탄저병과 세균구멍병(천공병)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경북지역 복숭아 주산지인 청도·경산 등에서 천공병과 탄저병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4월 저온피해 이후 실낱같은 희망으로 열매솎기와 수세 회복에 심혈을 기울이던 농가를 또 한번 울렸다. 최근 찾은 청도의 복숭아 과원엔 천공병으로 솎아낸 탁구공만 한 새파란 복숭아가 과원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9256㎡(2800평) 과원에서 복숭아를 재배하는 김용협씨(69·청도읍 내리)는 “6월말이면 수확인데 5월말부터 천공병이 급속하게 번지면서 이젠 수확할 열매가 거의 없다”며 “과원의 70%에서 천공병이 발생했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4월 저온피해 이후 열매솎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병이 급속하게 번질 줄 몰랐다”면서 “생산비는 생산비대로 들고 수확은 할 수 없으니 헛농사를 지었다. 요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고 말했다.
과원이 위치한 지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도를 비롯해 경산·영천 등 복숭아 주산지에서 천공병이 급속하게 번졌다.
조기동 청도농협 영농상담사는 “농가별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올해와 같은 3월 고온과 4월 저온, 5월 잦은 비 같은 기상이변 상황에선 세균병이 급속하게 번질 수밖에 없다”면서 “농가가 대처하기엔 한계가 있는, 그야말로 ‘천재’”라고 말했다.
정종도 청도복숭아연구소 실장은 “털복숭아 계통 어린 과실에 노린재가 가해하면 천공병에 쉽게 감염된다”면서 “천공병은 노린재 방제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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