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십수년째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만성적인 인력난과 소멸위기에 시달리는 우리 농업·농촌은 이민정책 활성화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인구감소 대응책으로 이민정책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법무부는 올초 출입국 이민정책 컨트롤타워로 ‘출입국·이민관리청(가칭)’을 상반기 안에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저출산 심화로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급속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국 인력의 유입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3738만명에서 2050년 2419만명으로 30년간 1319만명 감소한다.
이민정책을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와 엮는 구상도 내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5월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계절근로제 개선방안’ 브리핑에서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잘 지킨 성실 계절근로자에게 장기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민정책은 우리나라의 문화와 기준을 지키는 외국인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런 차원에서 계절근로제를 (이민정책에)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민정책의 활성화가 우리 농업·농촌이 겪는 여러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 농업분야는 매년 고용허가제·계절근로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했지만 현행 제도만으로는 갈수록 심해지는 인력난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밖에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만연 ▲숙련 근로자 부족 ▲다른 업종으로의 이탈 등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를 둘러싼 문제도 적지 않다.
농업분야의 외국 인력 도입을 이민정책과 엮는 아이디어도 하나둘 나온다. 전북연구원은 최근 ‘지역특화형 농업비자’를 제안했다. 지역특화형 농업비자는 농업분야에 숙련도를 갖춘 외국인 근로자가 농촌지역에 장기체류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한 비자다. 농촌지역에 5년간 거주하고 농업분야에 종사할 것을 약속하면 장기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주자는 것이 핵심이다. 조원지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지역특화형 농업비자로 농업인력을 확보해 농촌지역 인구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농촌 정주여건도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정책연구원은 외국인도 국내 농민 육성정책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장기근속 외국인 근로자에게 장기취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원칙적으로 고용허가제(E-9)·방문취업(H-2) 비자로 입국해 농업분야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외국인 근로자는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체류기한 제한이 없는 숙련기능인력 점수제(E-7-4)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법무부는 농축산업·뿌리산업 등 인력난을 겪는 산업분야에서 외국인 숙련기능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2018년 1월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E-7-4 비자는 ▲연평균 소득 증명 ▲관련 분야 자격증 소지 ▲보유자산 금액 등을 기준으로 해 농업분야의 외국인 근로자는 사실상 취득이 어렵다.
이민정책연구원은 “제조업 등 다른 업종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고 한국어 학습 기회가 제한된 작물재배업 종사 외국인이 점수제를 통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현행 제도를 개선해 이민 경로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민정책을 통해 국내로 유입한 외국인 근로자가 도시로 몰리지 않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이민정책을 적극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보다 앞서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펼친 호주·캐나다도 자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 대부분이 대도시에 집중되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민자를 인구소멸지역에 정착하도록 하는 ‘지역비자 정책’을 도입한 바 있다.
임동진 순천향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주관으로 열린 간담회에서 “호주와 캐나다는 지역비자 정책의 도입으로 인구소멸지역의 인구가 증가했고 지역비자 정책을 농촌지역과 지방대학 활성화와 연계해 국가 균형발전 정책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며 “우리나라도 지자체에 상당한 권한을 부여해 지자체가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한다”고 밝혔다.